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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김형곤이 보여준 웃음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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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김형곤이 보여준 웃음의 정치학

입력
2006.03.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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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곤이 세상을 떠났다. 원로 희극인 구봉서는 앞으로 그만한 코미디언이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는 말로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전성기의 김형곤은 우리 희극계에 모자라던 10프로, 나아가 최후의 2프로가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한국인은 재능과 열정으로 가득한 그의 연기 앞에서 웃음이 순수한 정신적 현상임을 실감했다.

●부조리 꼬집어 사회를 건강하게

사실 동물에게는 없고 인간에게만 있는 속성으로 언어능력이나 추상적 사고능력을 들지만, 웃음도 여기에 빼놓을 수 없다. 식물이나 동물은 웃음을 모른다. 웃음은 인간에게서만 나타나는 독특한 현상이자 모종의 직관능력을 전제하는 고도의 정신적 현상이다.

웃음거리가 되는 것은 보통 비정상적인 것인데, 웃을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정상과 비정상을 분별하고 그 둘 사이의 부조화를 측정하는 종합적 해석능력이 있어야 한다. 웃음은 그런 부조화를 일으킨 비정상에 대한 어떤 문제 제기라 할 수 있다.

특히 희극적 웃음은 비정상적인 것이 통제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일 때 터져 나온다. 가령 바지가 느닷없이 내려가는 바람에 광대가 쩔쩔맨다든지 아무리 참으려 해도 졸음이나 딸꾹질이 계속되는 장면을 생각해보라.

또는 공손한 태도나 어투로 말해야 할 내용을 끝내 억누르지 못한 노여움 때문에 퉁명한 어조로 말하는 장면을 생각해보라. “너나 잘 하세요”라는 말의 희극적 묘미도 이와 유사하게 내용과 형식의 불일치에서 오는 것이지만, 하여간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들은 보통 어떤 못 말리는 부조화, 어떤 통제 불가능한 부조리, 어떤 참을 수 없는 비정상을 연출하고 있다.

그런데 웃음이란 것은 남과 더불어 웃을 때에야 비로소 만끽할 수 있다. 같이 웃는 사람이 열 명, 백 명, 천 명으로 불어날수록 웃음은 말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남과 눈을 맞추면서 웃어보지 못한 사람은 진정한 웃음을 체험했다고 할 수 없다.

눈을 맞추면서 우리는 각자 웃는 이유와 근거를 서로 확증해주고, 그렇게 공고화된 근거는 더 큰 웃음의 유발원인이 된다. 하지만 이상하게 이런 상승적인 공명의 효과는 동일한 정신적 울타리 안에서만 일어날 수 있다.

외국에 나가 그 나라 사람들과 코미디를 함께 시청할 때는 누구나 소외감을 느낀다. 코미디언의 말을 알아듣기 어려워서라기보다는 같이 상승적으로 공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피식 웃을 수는 있어도 그 이상은 어려운 것이다. 과연 특정 종교인들이 웃음잔치를 벌이는 자리에서 비신도가 배가 아프도록 웃을 수 있을까. 여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남자가, 노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청년이 포복절도할 수 있을까.

희극적 웃음이 때로 국외자에게 배타적인 느낌을 주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러나 웃음의 정치학을 말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웃음이 폭발하면 우리의 온몸이 수축운동에 빠져든다.

하지만 이때 즐거운 경련을 일으키는 것은 또한 우리가 속한 정신적 공통체이다. 웃음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은 무엇보다 개인들을 묶는 결속의 끈이자 그 끈의 수축운동이다. 이 수축운동이 반복될수록 그 사회는 건강해진다. 병리적 현상에 대한 면역력과 퇴치능력을 더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감된 부조리에 대한 문제제기이자 그렇게 제기된 문제에 대한 방어운동이기 때문이다. 구성원 전체를 아우르는 새로운 희망은 그런 웃음 없이는 크게 자라나지 못할 것이다.

●80년대 코미디로 민주화 공포

김형곤은 시사 코미디의 일인자로 평가된다. 희극적 언어를 단순한 우스개 소리의 차원을 넘어서는 정치적 풍자의 차원으로 높이 올려놓았다. 특히 기형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1980년대의 정치적 현실에 대해, 당대의 마비된 정치의식에 대해 일깨움과 치료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데까지 끌고 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김형곤은 우리나라 민주화의 공로자라 할 수 있다.

김상환 서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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