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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면서] 네덜란드의 수도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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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면서] 네덜란드의 수도 이전

입력
2006.03.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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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째 한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행정수도 이전 문제와 관련, 수도와 정부가 다른 곳에 있는 네덜란드의 예를 들어보려 한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까지 네덜란드를 지배했던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그의 형제 루이스 보나파르트를 네덜란드 왕으로 점 찍었다. 1806년부터 5년 동안 왕좌에 있었던 그는 네덜란드의 진정한 ‘코닝’(왕)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네덜란드어도 열심히 배우려 했다. 물론 ‘코닝’을 ‘코나인’(토끼)으로 잘못 발음해 ‘네덜란드의 토끼’라는 비웃음을 샀지만 말이다.

●헤이그 비대해지자 부처 이전

루이스는 암스테르담의 성에 살면서 암스테르담을 수도로 선언했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루이스가 지나치게 네덜란드인들에게 관대한 정치를 펴자 그를 왕좌에서 몰아내고, 네덜란드를 프랑스에 병합시켰다.

1814년 네덜란드가 프랑스로부터 다시 독립하고 오렌지공 윌리엄이 새로 왕좌에 올랐다. 그는 암스테르담을 수도로 유지한 채, 정부는 헤이그에 세운다고 발표했다. 암스테르담이 훨씬 부유하고 강력한 도시였지만 말이다.

19세기 말이 되면서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처럼 네덜란드 사람들도 직장을 구하기 위해 큰 도시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당시 산업이 발달하고 직장을 구하기 쉬운 도시는 암스테르담, 유트렉트, 로테르담 세 곳이었다. 로테르담은 최대의 무역항으로 번성했고, 유트렉트는 모든 간선 철도가 통과하는 도시로서 급격하게 발전했다.

헤이그는 처음에는 그다지 인구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20세기 들어서 정부의 역할이 확대되면서 상황은 변하기 시작했다. 자동차와 기차가 발달하면서 이동이 자유로워진 많은 사람들이 헤이그 주변으로 이사하기 시작했다.

헤이그는 네덜란드의 한 복판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다른 주요 도시들로 쉽게 움직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1970년대 헤이그에서는 치솟는 부동산 가격과 교통혼잡이 큰 문제가 됐다. 정부는 꾸준히 집과 도로를 늘렸지만 해결책은 되지 않았다.

결국 정부는 다시 많은 행정부처를 북부와 남부 지역으로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공무원들의 주거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고, 덜 발전된 도시들에게 기회를 준다는 명분이었다. 당연히 많은 이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헤이그를 떠나려 하지 않았고, 정부는 그들에게 많은 보너스를 쥐어주며 반 강제적으로 이주를 독려했다.

●반대하던 공무원 지금은 만족

오늘날 당시에 자신이 근무하던 행정부처를 따라 이주한 대다수의 공무원들은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 그곳의 삶은 헤이그처럼 그렇게 복잡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정부가 의도했던 대로 새롭게 조성된 행정 도시들은 큰 발전을 이루었다.

서울의 지금 상황은 과거 헤이그의 그것과 비슷하다. 날마다 반복되는 교통 지옥이나 천정부지로 치솟는 부동산 가격 그리고 정부의 행정수도 이전 계획에 반대하는 야당과 공무원들까지. 한국 정부가 이 같은 상황을 어떻게 슬기롭게 헤쳐나갈지 궁금하다.

헨니 사브나이에ㆍ 네덜란드인ㆍ 단국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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