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야구의 심장 미국에 태극기를 꽂았다. 누가 대한민국 야구를 ‘변방’이라 폄하했던가.
미국 땅에서, 교민 3만 여명의 ‘대~한민국’ 연호 속에 한국 대표팀은 ‘US’호에 이어 ‘저팬’호를 또 한번 캘리포니아 앞 태평양에 격침시켰다.
TV중계를 지켜본 국민들과 태평양 너머 교민, 선수들은 모두 이 기세, 이 기백 그대로 결승에 오르자며 두 손을 번쩍 치켜들고 온종일 ‘대~한민국’을 외쳤다.
투혼(鬪魂).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아시아 예선 ‘도쿄 대첩’에서 승리했던 한국이 미국에 이어 16일(한국시간) 열린 2차 한일전에서도 승리하면서 결승 진출에 대한 자신감과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실제 한국 대표팀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충천해 있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강한 정신력, 인화로 뭉친 선수단의 단합된 힘, 뛰어난 코칭스태프의 리더십 등은 앞으로 4강 또는 결승에서 어느 팀과 붙어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나타나고 있다.
경기후 가진 기자회견에서도 이승엽(요미우리)은 “우리 야구의 실력은 떨어지지만 팀워크와 정신력, 집중력으로 극복했다. 한국 사람만의 끈끈함으로 이뤄냈다”는 말로 이 같은 팀 분위기를 전했다.
이제 7, 8부 능선 정도에 오른 한국 대표팀의 결승 진출 및 우승 가능성까지도 언급할 수 있게 된데는 전 국민은 물론 현지 동포들의 생업조차 잊은 응원과 격려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날 로스앤젤레스 남동쪽 애너하임에 있는 에인절 스타디움은 ‘캘리포니아의 잠실 구장’으로 바뀌었다. 관중석은 경기 시작 전부터 태극기로 물결을 이뤘다. 신명 나는 꽹과리 장단에 한국 야구장에서나 볼 수 있는 응원 막대까지 동원됐다.
동포들은 ‘KOREA’가 새겨진 티셔츠와 종이 태극기를 무료로 배포했으며, 젊은이들은 보디 페인팅으로 대표팀에 힘을 보탰다.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동포들은 마치 이곳이 잠실 구장이라도 되는 양 파도 타기 응원을 연출해 보이기도 했다.
경기 전 훈련시간 때는 한국 대표팀이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WBC 본선 들어 처음으로 경기장에 한국 음악까지 흘러나와 그야말로 한국 일색을 이뤘다.
경기 후 이종범은 “동포들의 함성 속에 2루타를 치는 순간 내가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며 “경기 내내 ‘대~한민국’이 들릴 때마다 가슴이 벅차 올랐다”고 말했다.
9회말. 일본의 마지막 대타 다무라가 헛스윙 삼진 아웃되자 한국 야구사에 길이 남을 위업을 이룬 선수들은 모두 마운드로 뛰어나가 포옹하며 승리의 감격을 만끽했고, 관중석을 꽉 메운 동포들은 모두 기립 박수를 보냈다.
8회 통쾌한 결승 2루타를 날린 주장 이종범이 대형 태극기를 흔들며 외야 관중석쪽으로 선수들을 이끌었다. 운동장을 한 바퀴 돈 선수들이 마운드에 모였다 내려갈 때쯤 투수 서재응이 마운드 중앙으로 올라가 태극기를 꽂았다.
경기를 중계한 ESPN은 이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클로즈업해 방송했다. 나이 지긋한 동포들은 감격에 겨운 나머지 눈물이 고였고, 젊은이들은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외쳤다.
이날 캘리포니아 주요 지역 한인타운에서는 일찌감치 인적이 사라졌다. 일부 문을 연 상점에는 미처 귀가하지 못한 교민들이 모여 밤늦게 까지 세계 야구 제패의 신화를 보게될지도 모른다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모습이었다.
WBC 2라운드 1조 1위로 4강 진출을 확정한 한국 대표팀은 19일 낮 12시(한국시간) 1조 2위팀과 샌디에이고 펫코 파크에서 결승 진출을 다툰다.
애너하임=이승택 기자 ls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