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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식과 위선 까발린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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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식과 위선 까발린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입력
2006.03.16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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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은 선정적인 제목과 섹스 코미디라는 자극적인 홍보문구에 끌려 극장에 들어서면 낭패를 볼 영화다. 여교수라는 그럴싸한 사회적 위치와 ‘은밀한’ 이라는 야릇한 형용사가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만들어낼 수 있는, 성인들을 위한 에로티시즘의 농밀한 ‘즐거움’을 기대했다면 실망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한없이 불량했던 과거를 감추면서도 끓어오르는 성적 본능은 억제할 수 없는, 어느 지방 대학의 염색학과 교수 조은숙(문소리)은 그녀와 동침하고 싶어 안달하는 남성들에 둘러싸여 있다.

은숙은 사내들의 흑심을 모르는 척, 그들의 육탄공세에 못이기는 척 하며 인생을 ‘즐긴다’. 다리를 절고 절세미인도 아닌데, 더군다나 환경보호 운동을 하면서도 서슴없이 쓰레기를 버리는 위선 덩어리인 그녀에게 무슨 특별한 매력이 있는 것일까.

몇 차례 적나라한 정사 장면이 등장하지만 ‘여교수…’는 섹스보다는 코미디에 방점을 찍는 영화다. 성적 농담을 질펀하게 늘어놓는 대신 세상의 온갖 가식과 위선을 들추고 파헤치며 서늘하고 어두운 웃음을 다연발로 쏟아낸다.

여왕벌처럼 뭇 수컷들을 농락하고 지배하는 은숙과 지리멸렬한 사내들이 합작해내는 ‘허리 아래 이야기’는 은숙과 중학교 시절 같이 담배 피고 몸까지 섞은 석규(지진희)가 같은 대학 만화과 강사로 부임하면서 조금씩 균열을 일으킨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블랙코미디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초등학교 교사 유선생(유승목)이 질투심에 사로잡혀 은숙과 석규의 뒤를 캐고, 둘을 천하에 상종 못할 ‘생 양아치’로 매도하는 장면 등을 통해 영화는 우리 사회 정상인들의 속물 근성과 졸렬함을 통렬하게 조롱한다.

낯선 영화 언어로 황당하면서 진지한 방식으로 왜곡된 인간관계를 드러내는 홍상수 영화의 코믹 버전이라 봐도 무리가 없다. 이 사회 인물 군상들의 낯 뜨거운 이중생활을 뻔뻔하다 싶을 정도로 발칙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용기가 있고, 그 때문에 관객들은 뜨끔하면서 적지 않은 반발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순도 100%의 순수함과 정직함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충분히 공감할 작품이다.

지진희는 느물거리는 속물 강사 역을 맞춤옷을 입은 것처럼 연기해 낸다. 반듯한 역할을 주로 맡아 신사의 이미지가 강했던 그가 그 이미지를 깨고 연기의 폭을 넓힌 것은 박수를 쳐줄 만하다. 문소리는 “PD라서 PDI(PDA를 잘못 가리켜 한 말)를 쓰시는 건가요”라며 교양 있는 척 하는 가운데 무식을 드러내는 고난도의 연기를 자연스럽게 소화해낸다.

이하 감독이 1996년 중학생들이 성관계 동영상을 유포해 물의를 일으킨 ‘빨간 마후라’ 사건을 모티브로 쓴 시나리오 ‘질투는 전투다’를 영화화했다. 그 때 그 아이들이 20년 뒤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물음에서 출발한 영화지만 ‘빨간 마후라’를 연상시키는 대사나 장면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16일 개봉. 18세.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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