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이 남아 있는 북한에 호의적인 단체라고 해서 애정을 가지고 지켜봤는데 아무리 봐도 아닌 것 같습니다.”
15일 오전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A(26)씨의 목소리는 가볍게 떨렸다. 22일부터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북한인권국제대회를 저지하기 위해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소속 학생들이 해외 원정시위를 준비한다는 소식에 대해 얘기하던 차였다. 2002년 탈북해 대학에서 정치학을 배우고 있는 그는 “탈북자들이 이들의 철없는 행동에 분격(격분)해 있다”고 했다.
북한에 대한 탈북자들의 분노야 어쩌면 당연하고, 필 끓는 대학생들이 세상에 관심을 보이고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 또한 나무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근거 없는 신념에 사로잡혀 있다면 문제는 다르다. 한총련은 원정에 앞서 범민련 북측본부가 보내온 글을 각 대학에 배포했다. 이 글은 “우리에게는 탈북자가 있을 수 없다”며 “유괴자들에게 속아 남조선으로 끌려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한다.
A씨는 “내 눈앞에서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봤고, 여기저기로 들리는 얘기를 종합하면 북한의 인권 상황이 열악한 것은 분명하다. 그걸 도외시하고 미국의 내정 간섭, 자주 통일 운운하며 대회를 저지하겠다는 것은 코미디”라며 전화기 너머로 쓴웃음을 지었다.
현실적으로도 이번 원정 시위는 아픈 과거를 떠올리게 하며 우려를 낳는다. 지난해 한국 농민들이 주축이 됐던 홍콩 원정시위대의 과격 시위는 국제사회의 차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다.
130만원의 사비를 털어 원정 시위에 나서겠다는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대표’에 대해 등록금 문제로 고민하고 있을 많은 동료 학생들이 어떤 생각을 할지, 비행기에 오르기 전 다시 한번 고민해보길 바란다.
정민승 사회부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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