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개발은행(DBS)이 외환은행 인수를 위한 출사표를 던지면서, 외환은행 인수전의 ‘다크호스’로 등장할지 아니면 하나은행의 인수를 돕는 ‘들러리 플레이어’ 정도에 그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잭슨 타이 DBS 은행장이 직접 방한해 외환은행 인수제안서 제출 작업을 주도하고, 14일 기자간담회까지 연 것을 보면 일단 외환은행 인수 의지는 다부져 보인다. 타이 행장은 “1년 전부터 외환은행 인수를 준비해 왔다”며 “아시아 리딩 은행그룹이 되기 위한 일환으로 이해해 달라”고 강조했다.
그는 “파트너 없이 단독으로 외환은행을 인수할 여력이 충분하다”면서 “잠시 투자하다 떠나는 투기자본도 아닌, 건전한 은행자본”이라고 강조했다. DBS는 싱가포르 등 동남아의 최대 은행으로 홍콩은 물론 중국, 인도, 태국 등과 한국에도 지점을 두고 있다. 자금 조달에서도 크게 어려움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관건은 금융감독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통과할 수 있느냐 여부. DBS의 최대주주는 28% 지분을 가지고 있는 싱가포르의 국영투자회사 테마섹이다. 테마섹은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의 며느리가 대표로 있으며, 싱가포르의 전력과 항만 등 공기업을 장악하고 있다.
한국의 부동산에도 투자하고 있으며, 외환은행 인수전에 참가한 하나금융의 대주주(9.89%) 이기도 하다. 문제는 테마섹이 금융감독당국으로부터 산업자본, 즉 국내은행 지분의 10% 이상 보유가 불가능한 비금융주력자로 분류돼 있다는 것. 하나은행 지분을 취득할 때도 4%까지만 의결권을 인정받았다.
따라서 규모나 자금, 경쟁력 등에서 국민ㆍ하나은행에 뒤질 것 없는 DBS가 외환은행 인수전에서 유력한 후보로 등장할 것인가는 ‘DBS=테마섹’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인수 주체를 테마섹이 아닌 DBS로 볼 것인지에 달린 셈이다.
테마섹이 DBS에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판단되면 DBS도 비금융주력자로 분류될 수밖에 없다. 테마섹이 대주주이기는 하지만 70%에 달하는 전체 외국인 주주들의 신뢰를 받고 있는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이 DBS와 공동으로 외환은행 인수를 추진하다 결별한 것도 이 때문이다.
타이 행장은 “DBS 경영은 테마섹과 독립적”이라고 말했지만, 금융감독당국은 신중한 입장이다. 최근 헐값매각 논란이 부상하면서 외국자본에 비우호적인 국민정서도 걸림돌이다. 반면 DBS의 팬 아시아은행그룹전략이 금융허브를 지향하는 우리 정부에 긍정적인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지적도 있다.
금융계 일각에서는 DBS가 하나은행의 들러리 플레이어라는 시각도 제기하고 있다. 독자적으로 인수제안서를 내기는 했지만 인수과정에서 공조를 취할 수 있고, 만일 DBS가 외환은행 대주주가 될 경우 역시 테마섹이 대주주로 있는 하나은행과 합병 등 어떤 방식으로든 제휴를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김용식기자 jawohl@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