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새롭게 발생하는 사건이나 현상, 사회적 이슈를 객관적이고 공정한 방식으로 보도하고 논평함으로써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회 공론장 역할을 한다.
적어도 민주사회는 언론에게 어느 편에도 기울어지지 않고 쉽게 짜증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규범적인 정론보도를 기대하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언론에 의한 뉴스 생산 과정의 현실에는 상업적 이해나 정파적 편들기, 기자와 취재원과의 갈등 등이 알게 모르게 녹아 들어가 온갖 파행적인 저널리즘 양태가 나타난다.
독자들의 말초적 신경을 자극하는 선정성 경쟁의 황색 저널리즘, 특정 정파와 코드를 맞추고 편파보도를 하는 정파적 저널리즘, 특정한 이념이나 이슈를 적극 지지하는 보도를 하는 옹호 저널리즘, 자사와 적대적 관계에 있는 취재원에 대해 비판을 넘어선 비방을 일삼는 공격 저널리즘, 공공 이슈에 대해 감정적으로 쉽게 흥분했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망각해 버려 정책적 해결에 도움을 못 주는 냄비 저널리즘과 같은 용어들은 정도에서 일탈하고 변형된 언론의 현주소를 말해주고 있다.
‘가차 저널리즘’도 있다. 영어로 가차(gotcha)는 갓유(got you)의 구어체로 “너 잘 걸렸어”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가차 저널리즘은 평소에 미운 감정을 가진 취재원을 기회가 되면 언젠가 손 한번 봐주겠다고 벼르는 언론사나 기자의 억하심정의 발로이다.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손봐주기 저널리즘 정도나 될까.
가차 저널리즘은 언론이 정당한 취재보도 행위라는 합법적인 수단을 통해 취재원을 공격하고 침몰시키기 때문에 여기에 걸려든 취재원은 빠져 나오기 어렵고 간신히 위기를 모면한다 해도 상처 투성이가 되기 쉽다.
이해찬 총리의 부산 3ㆍ1절 골프가 파문 또는 추문으로 비화한 것은 상당 부분 일부 언론의 손봐주기 저널리즘 심리가 발동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이미 이 총리의 정치적 자산이랄 수 있는 개혁 이미지는 만신창이가 됐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 총리가 철도파업이 한창인 3ㆍ1절 휴일에 골프를 친 것은 부적절했지만 부당한 것은 아니었다. 접대와 내기 골프도 고쳐야 될 관행이지만 고위 공무원의 비행이라고 보기 어렵다.
총리가 부도덕한 기업인들과 꽤 친밀한 형식으로 동석했다는 사실이 불법 로비 의혹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로비의 증거는 아직 없다.
영향력이 큰 일부 언론은 처음부터 총리의 3ㆍ1절 휴일 골프를 부적절한 수준을 넘어서서 부도덕하고 부당한 행위로 규정하고 문제를 삼았다. 이후 공교롭게도 이 총리와 동석한 인물 가운데 불법 주식조작과 불공정 행위에 연루된 부도덕한 기업인들이 포함돼 있었다는 사실은 총리에 적대적이던 언론에게는 호재로 작용했을 터이다.
언론은 이러이러한 의혹이 일고 있다는 사실 보도 형식을 취하고 있었지만 이런 보도의 의도는 의혹을 기정사실화하고 궁극적으로 이 기회에 미운 총리를 끌어 내려야 한다는 억하심정이 발동됐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언론들은 검증되지 않은 의혹을 가지고 총리의 사퇴를 주장해왔다.
이 총리는 그 동안 벼르고 있던 일부 언론의 손봐주기 저널리즘의 덫에 단단히 걸려 들었다. 억울할 터이지만 여러 정황이 불리하게 진행돼왔다.
무엇보다 개혁과 혁신을 주장하는 참여 정부에서 용납하기 어려운 기업의 불법 주가조작과 불공정거래의 묵인 사실이 이 총리의 진퇴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 말았다. 언론이 그렇게 보도했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의 이 총리 손봐주기는 상당부분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이 총리의 경질로 한국 사회가 얻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 이다.
언론의 총리 골프파문 보도에서 거론된 권력 비리와 기업 비리, 그리고 정경유착의 문제가 이번 보도로 개선의 여지가 있는 것인가. 의문스럽다.
손봐주기 저널리즘은 공공의 이익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언론과 취재원간의 갈등적이고 소모적인 억하심정의 표출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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