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대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는 1960년 5월 1일 소련 영공에서 U-2기가 격추돼 조종사가 체포된 사건이 일어난 시간에 골프를 친 사실이 드러나 언론으로부터 호된 비난을 받았다.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첫손 꼽히는 골프광이었던 그는 백악관 뜰에서 치핑 연습을 하고 틈만 나면 집무실에서 퍼팅 연습에 열중했다.
●사랑과 구박 함께 받는 스포츠
마스터스 대회가 열리는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의 회원이었던 그는 17번 홀 페어웨이에 있는 나무를 맞히는 징크스가 있었다. 그 때마다 클럽 회장에게 “저 나무 좀 없애줄 수 없겠소?”하고 여러 차례 요청했으나 클럽 회장은 그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덕분에 그 나무는 ‘아이크의 나무’라는 애칭을 얻었다.
미국의 대통령이나 영국의 총리는 대부분 골프를 즐겼다. 레이건은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의 단골손님이었고 제럴드 포드는 수십 명의 경호원을 대동하고 프로대회에 출전할 정도였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인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서 사상 처음 시니어 프로대회에 참가해 언더 파 기록을 내기도 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역시 소문난 골프광으로, 휴가 때는 물론 틈만 나면 골프장으로 달려가 프로골퍼 운동선수 배우 등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과 골프를 즐겼다.
영국의 아서 발포어 총리는 골프와 관련한 많은 명언을 남긴 골프광이었다. ‘인간의 지혜로 발명한 놀 이 중에 골프만큼 건강과 보양, 상쾌함과 흥분, 그리고 지칠 줄 모르는 즐거움을 주는 것도 없다’ ‘스코어만이 목적인 인간은 골프의 참 맛을 느낄 수 없다.
그들은 피에 굶주린 야만적인 사냥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등이 그가 남긴 골프 명언이다. 처칠 총리도 골프를 쳤지만 즐기는 편이 못 되었던지 “골프란 아주 작은 볼을, 아주 작은 구멍에, 아주 부적합한 채로 쳐 넣는 게임이다”는 불만 어린 정의를 남기기도 했다.
골프는 애호가들에겐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불가사의한 스포츠’로 사랑 받고 있지만 초기엔 백해무익한 놀이로 구박을 받았다. 15세기 스코틀랜드의 국왕들은 백성들이 골프와 축구에 빠져 무술 연마를 게을리하자 여러 차례 골프금지령을 내렸다.
그러나 국왕 스스로 골프에 빠져 금지령을 위반하는가 하면 여왕이 남편이 죽은 지 며칠 만에 젊은 장교와 골프를 쳤다가 교회의 분노를 사 처형당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2차 대전 중에도 골프는 중단되지 않았다. 일부 골프클럽에 ‘경기 중 권총사격이나 포 사격이 있을 경우 플레이어는 경기 중단에 대한 페널티 없이 몸을 숨길 수 있다.’ ‘적의 공격으로 볼이 움직이면 리플레이스할 수 있으며 같은 상황에서 볼을 잃어버리거나 볼이 깨어졌을 경우 홀에 가깝지 않은 지점에 벌타 없이 드롭할 수 있다’는 등의 로컬 룰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전쟁은 골프 룰의 변경을 초래할 정도의 영향을 미치는 데 그쳤다.
●'부적절한 골프'가 자초한 벼랑
이해찬 국무총리도 서구의 대통령이나 총리 못지않은 골프광인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대형 산불이 났을 때, 남부지역에 집중호우가 내렸을 때 골프를 쳐서 홍역을 치르고도 철도파업 첫 날인 3ㆍ1절에 골프를 감행했으니 말이다. 차이가 있다면 골프와 등산을 혼동하듯, 순수한 스포츠로서의 골프와 접대나 로비 목적의 골프를 구별 못하는 것 정도겠다.
사소한 듯한 이 혼동이 나라 전체를 혼란에 몰아넣어 결국 벼랑에 이르고야 말았다. 대국민 사과를 거듭하며 사의를 표명하고도 끝내 진실을 털어놓지 않는 총리나, 그를 내치지 않으려고 온갖 논리를 동원하다 총리의 3ㆍ1절 골프가 부적절 덩어리임이 드러나서야 마지 못해 대세를 인정하는 집권층의 모습에 국민은 더 피곤하다.
이쯤 되면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을 피하려 하기보다는 골프를 처음 권했던 사람이 ‘정직한 골프’를 강조해주지 않은 것을 원망함이 인간답지 않을까.
방민준 논설위원실장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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