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영화를 만들면 늘 마이너리티(minority) 얘기로 흘러가요. 100명이 있으면 99명보다는 늘 나머지 1명에 눈길이 갑니다.”
변혁의 열기로 가득한 1968년 일본을 배경으로 재일 조선고 학생과 일본고 학생들의 갈등과 화해를 그린 일본영화 ‘박치기’의 이즈츠 가즈유키(井筒和幸ㆍ53) 감독이 11일 한국을 찾았다. 마츠야마 다케시의 소설 ‘소년 M의 임진강’을 스크린으로 옮긴 ‘박치기’는 일본 영화비평지 키네마준보와 아사히신문이 선정한 2005년 베스트영화 1위에 오르는 등 비평과 흥행 양면에서 성공을 거둔 화제작. 국내에는 지난달 단관 개봉으로 조촐하게 선보였지만 연일 매진 행렬을 이어가며 잔잔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재일 조선인 차별 문제는 이즈츠 감독이 5년간의 포르노그래피 이력에 마침표를 찍게 해준 첫 영화 ‘아이들의 제국’에서부터 일관되게 추구해온 주제다. “재일교포는 역사에서 잊혀져가는 소수자입니다. 꼭 재일교포만 아니라 역사가 기억하지 않는 마이너리티들이 빛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게 제 영화인생의 테마예요.”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착한 영화를 만들면서도 웃음과 유머를 잃지 않는 게 이즈츠 감독의 가장 큰 미덕. “인권회복을 외치는 교조주의적 교육영화가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영화는 예술인 동시에 엔터테인먼트이기 때문에 대중영화 감독으로선 당연한 자세입니다.”
영화는 일본인 감독과 배우들이 만든 영화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재일 조선인 사회의 문화와 언어를 생생한 디테일로 그려내고 있다. “제가 간사이 지역 나라 출신인데 그곳은 재일교포 밀집지역이 많아 자연스럽게 그 문화를 익혔어요. 극중 ‘쪽빨이 새끼야’ 같은 대사는 실제 재일교포들로부터 많이 접했던 말이죠.”
배창호 감독의 ‘깊고 푸른 밤’ ‘고래사냥’부터 한국영화를 쭉 봤다는 이즈츠 감독은 “한국영화는 ‘쉬리’ ‘JSA’ ‘살인의 추억’ ‘올드보이’ 등 정치성과 사회성이 짙은 영화가 많아 굉장히 좋다”며 정치성을 탈각한 일본영화에 대한 비판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요즘 일본영화가 발랄하고 유쾌한 건 좋은데 사회나 역사를 너무 모르는 건 문제예요. 아주 싸구려죠. ‘스윙걸즈’만 봐도 단순히 나팔만 분다고 다냐 이겁니다.”
인터뷰의 압권은 독설로 유명한 ‘괴짜 감독’다운 그의 한류에 대한 일갈. “욘사마를 보고 박수치며 헤헤 거리는 아줌마들이 옛날에 조선인 차별하던 그 사람들이에요. 갑자기 막 좋아하는데, 그 변신의 이유를 따져보면 일본인론(論)이 나올 겁니다. 배용준을 보고 있으면 한국인의 한(恨)이 느껴져요. 그런데 촬영지로 견학가는 그 아줌마들은 한 같은 걸 모르죠. 나하고 그 아줌마들 사이엔 건널 수 없는 임진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아줌마들한테 박치기를 날려야 해요. 물론 영화를 통해!”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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