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오락프로그램이 남자들의 수다로 가득하다. 오락 프로그램에서 남자 진행자나 출연자가 주도권을 잡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에는 아예 남자들만의 질펀한(?) 수다가 끌어가는 프로그램이 늘고 있다.
KBS2 ‘상상플러스’의 ‘올드&뉴’, MBC ‘강력추천 토요일’의 ‘무한도전’은 문제를 내는 여자 아나운서를 제외하면 패널이 모두 남자다. ‘올드&뉴’는 초대손님도 대부분 남자들이고, 서로를 부르는 호칭도 ‘O대감’이다.
최근 신설된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차승원의 헬스클럽’과 최민수가 이끄는 KBS2 ‘해피 선데이’의 ‘품행제로’는 진행자는 물론, 출연자들도 모두 남자들이다. SBS ‘일요일이 좋다’의 ‘반전극장’, MBC ‘강력추천 토요일’의 ‘키워줘서 고마워’도 각각 꽃미남 그룹 동방신기와 SS501 멤버들이 엮어간다.
이 같은 현상은 오락프로그램의 트렌드 변화와 연관이 있다. 요즘 오락프로그램은 SBS ‘야심만만’이나 MBC ‘놀러와’처럼 남녀의 연애심리를 들춰보는 토크쇼나 SBS ‘실제상황 토요일’의 ‘리얼로망스 연애편지’ 같은 짝짓기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부여받은 미션을 완수해가는 과정을 들여다보는 ‘목표달성’ 프로그램으로 무게 중심이 옮아가고 있다.
10대들이 모르는 어른들의 말, 어른들이 모르는 10대의 말을 맞혀보는 ‘올드&뉴’, 각각 몸짱 만들기와 불량학생 계도를 목표로 내세운 ‘헬스클럽’과 ‘품행제로’ 등이 그 예다.
‘일밤’의 권석 PD는 “목표달성 프로그램에서는 힘들고 거친, 그래서 때로는 심하게 망가지기도 하는 미션을 주는 경우가 많은데 여자들이 하면 시청자들이 웃음보다는 불편함을 느끼게 돼 남자를 선호하는 것 같다”며 “남자들끼리는 말하기도 편하고, 뭔가 통하는 게 있어 출연자들 사이에 유대관계가 쉽게 형성되는 이점도 있다”고 말했다.
남자들로만 꾸미는 오락프로그램이 늘고 있는 데는 주 시청자가 10~30대 여성이라는 점도 작용한다. 꽃미남 스타들을 내세워 여심(女心)을 유혹하거나 여자들이 모르는 남자들만의 세계를 엿보는 색다른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넓게 보면, ‘왕의 남자’ 흥행 돌풍도 의도와는 상관없이 ‘예쁜 남자’ 이준기를 중심으로 한 남자들의 애증 관계에 젊은 여성 관객들이 크게 호응한 덕이다. 드라마 비평 사이트 드라마몹의 에디터 소연(29)씨는 “여자 연예인이 나오면 그 여성에 감정이 이입돼 편하게 오락으로 즐기기 힘든 반면, 남자들만 출연할 때는 그들을 대상화시켜 보고 즐기는 재미가 있다”고 말한다.
문화평론가 김헌식씨는 주로 젊은 여성들이 좋아하는 남성 스타들의 이야기를 지어내 즐기는 이른바 ‘팬픽’ 문화의 영향을 든다. 동방신기의 ‘반전극장’이나 SS501의 ‘키워줘서 고마워’는 동경하는 스타의 사생활, 애정관계 따위를 상상으로만 즐기던 ‘팬픽’의 세계를 실제 화면으로 보여준다.
실제로 ‘반전극장’은 12일 방송에서 ‘팬픽’의 주된 소재인 동성애 코드를 차용, 유노윤호와 영웅재중의 진한 애정 신을 내보내 팬들을 열광시켰다. 태극전사를 꿈구는 꼬마 신사들의 좌충우돌 축구 수련기를 담은 ‘해피 선데이’의 ‘날아라 슛돌이’도 멤버별로 팬 클럽이 생겨날 정도로 여성 시청자들의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러나 이런 프로그램들이 여성을 여전히 수동적인 역할에 머무르게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헌식씨는 “대중문화의 가장 중요한 소비자지만 실제 콘텐츠에서는 피동적인 구애의 대상이나 관찰자에만 머무르는 여성의 역할이 보다 주체적인 모습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명석 객원기자 lennone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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