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G와 칼 아이칸측의 경영권 분쟁이 국내 자본과 외국 자본간 장기 전면전으로 확대되고 있다. 외국 기관 상당수가 ‘흑기사(공격자 우호세력)’로 부상한데 맞서 국내 은행들이 ‘백기사(방어자 우호세력)’를 자임하고 나서는 등 이번 분쟁은 KT&G와 아이칸의 경영권 공방을 넘어 백기사 대 흑기사, 토종자본 대 외국자본간 대결국면으로 접어들게 됐다.
기업은행과 우리은행은 13일 ‘KT&G 성장위원회’를 구성, 회사에 대한 실사에 나서겠다는 요청공문을 KT&G측에 보냈다. 두 은행은 실사 후 KT&G 자사주 매입 등을 통해 본격적인 백기사 활동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기업은행은 KT&G 지분을 5.85%을 보유한 국내 최대주주이며, 우리은행은 계열사인 우리자산운용이 0.9%의 지분을 갖고 있다.
KT&G의 자사주는 총 9.76%. 17일 주총은 이미 주주명부가 폐쇄됐지만, 주총 이후 이 지분이 백기사에게 넘어가면 향후 확실한 경영권 방어수단 역할을 하게 된다.
우리은행과 기업은행은 “다른 기관투자가에게도 (백기사단의) 문호를 적극 개방한다”고 밝혀, KT&G의 주채권은행인 농협이나 산업은행 등 ‘토종 기관’들의 합류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3.11%의 지분을 갖고 있는 국민연금의 경우 14일 표결방향을 최종 확정할 예정이나, 현재로선 ‘잠재적 백기사’로 분류되는 분위기다.
이와는 별도로 우리자산운용 한국운용 등 30개 자산운용사들도 이번 주총에서 KT&G측에 찬성표를 던지겠다고 공시했다. 자산운용사들이 갖고 있는 KT&G지분은 3%가 조금 넘는다. 투자패턴상 자산운용사들이 직접 백기사 그룹에 참여하기는 어렵지만, KT&G와의 관계를 감안할 때 적어도 아이칸 편에 서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처럼 국내 은행과 기관들이 ‘백색 깃발’아래 모여들게 된 것은 외국인 주주 대부분이 친(親)아이칸 행보를 보이는 것에 대한 대항적 성격이 짙다. 이미 35%의 우호지분으로 사외이사 당선권에 진입한 아이칸측은 지금도 외국인 투자가들을 중심으로 계속 세(勢)를 얻고 있는 상황. 아이칸 지지를 선언한 KT&G 최대 주주인 프랭클린뮤추얼이 지난달 23일 이후 주식매집을 통해 지분율을 9.37%까지 확대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처럼 ‘흑기사 단원’들이 늘어남에 따라 이에 맞서는 백기사단도 조직화가 시급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여기엔 우리은행, 기업은행의 ‘토종자본론’ 영업전략도 작용했다. 일각에선 정부의 배후조종 의혹을 제기하지만, 그런 징후는 발견되지 않는다.
현재로선 KT&G 경영권 분쟁은 이번 주총 보다 오히려 주총 이후가 더 주목되는 상황. 한 애널리스트는 “아이칸측은 현 우호지분만 유지해도 차기, 차차기 주총에서 계속 사외이사수를 늘려갈 수 있다”며 “진짜 싸움은 오히려 주총 이후부터”라고 말했다. KT&G의 백기사단이 등장한 것도 이런 장기전에 대비한 포석인 것이다.
다만 흑백의 기사대결이 적대적 인수합병(M&A)의 통상적 틀을 벗어나 ‘자본의 국적대결’양상으로 흐르는 것은 한국시장 전체에 대한 불신을 초래할 수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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