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크백 마운틴’으로 2006년 아카데미 감독상을 탄 리안은 대만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는 1949년 국민당 정권이 패퇴할 때 중국 본토에서 대만으로 이주한 외성인(外省人)이다.
리안은 아버지가 교장으로 있던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입학자격시험에 두 번이나 떨어지고 나서 국립예술학교에 진학했고, 졸업후 군 복무를 마친 뒤 미국에 건너가 일리노이대학과 뉴욕대학 대학원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직접 각본을 쓴 초기의‘아버지 3부작’‘쿵후선생’(1992) ‘결혼피로연’(1993) ‘음식남녀’(1994)에서 대만의 가족사를 다루었던 그가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각색한 ‘센스 앤 센서빌리티’(1995)를 연출하면서부터. 그 후 ‘아이스 스톰’(1997)에서는 1970년대 미국 중산층 가정의 황폐한 내면세계를 보여주었고,‘라이드 위드 데블’(1999)에서는 미국 남북전쟁 당시 남군 게릴라 이야기를 다루었다.
주변인 내지는 이방인의 시각과 감수성을 살리는 방식으로 할리우드 주류 영화계에 진입한 리안은 ‘와호장룡’(2000)에서는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헐크’(2003)에서는 상업적으로 실패했다.
1997년‘뉴요커’지에 발표된 애니 프루의 단편소설이 원작인‘브로크백 마운틴’은 오스카상 수상 이전부터 미국 사회에서‘동성애 서부영화’라는 이유로 많은 논란과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동성애를 혐오하는 공화당원들이 격렬한 비난을 퍼부은 반면, 정치적, 문화적 관용을 주장하는 민주당원들은 이 영화를 옹호해 왔다.
이재현(이하 현): 먼저 수상을 축하한다. 히치콕이나 큐브릭이나 스콜세지도 감독상을 타지는 못했다. 작품상을 못 타서 서운하지는 않은가?
리안: ‘크래시’처럼 제한된 시공간 안에 많은 등장인물이 교차해서 나오는 작품은 본디 만들기가 어렵다. 제작, 감독, 원안, 각본을 다 맡았던 폴 해기스를 칭찬하고 싶다.‘시민 케인’은 1942년 아카데미 9개 부문 후보작이었지만 작품상이나 감독상은커녕 겨우 각본상을 타는데 그쳤다. 나는 운이 좋은 것이다.
현: 인종 문제는 미국 주류사회로서는 이미 그 해결을 포기해버린 문제인데다 특히 ‘크래시’의 무대가 LA라서 수상을 했다는 분석도 있다. 인종 문제를 다룬 저예산 영화에 작품상을 줌으로써 아카데미 구성원들이 동성애 서부영화에 대한 거부감과 부담감을 해소시켜버렸다는 얘기다.
서부영화라는 것은 그 자체로 미국의 건국신화와 연결돼 있으니까 말이다. 서부영화의 주인공이 동성애자라는 것은 상당수 미국인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게 아닌가. 반면 아카데미 구성원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도시가 LA이기도 하다.
리안: 여배우가 나오지 않거나 비중이 작은 서부영화에는 원래 동성애적 요소가 있는 법이다. 하지만 내 영화는 그런 의미의 동성애 서부영화가 아니다. 금지된 사랑을 나누던 두 사람의 로맨스일 뿐이다. 다만, 그 사람들이 모두 카우보이라는 거다.
현: 말장난같이 들린다.‘브로크백 마운틴’은 미국 사회에서 이미 동성애 서부영화로 낙인찍혔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화제가 됐고 흥행에서도 상당히 성공한 것이다. 당신과 제작사가 마케팅하는 과정에서 로맨스로 포장해 선전한다고 해서 사정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리안: 영화를 직접 보고 하는 얘기인가?
현: 물론이다. 심지어 후반부에서 두 주인공 에니스와 잭이 다투는 장면에서는 울기까지 했다. 한낮이라 주위에 다른 관객이 많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리안: 당신이 운 것은 당신이 동성애자라서인가?
현(벌컥): 그건 절대 아니다.
리안: 그렇다면, 이 영화가 로맨스라는 내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현: 그렇다고 해서 게이 웨스턴이 아니라는 논증이 성립하는 것도 아니다. 당신은 ‘타이타닉’ 수준의 명성만을 원하는 듯하다. 하지만‘미드나잇 카우보이’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와 비교할 때 미흡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리안: 내 영화가 맘에 들지 않는다는 얘기인가?
현: ‘브로크백 마운틴’이 비교적 잘 만든 영화라는 것은 인정한다. 록키 산맥의 경관도 보기 좋았고, 당신이 다양한 방식으로 프레임들을, 그러니까 필름 말고도 창이라든가 옷장 문, 사진 등과 같은 다양한 프레임들을 활용하면서 쇼트(shot)와 쇼트를 연결한 것도 효과적이었다.
리안: 좋게 보았으면 좋게 써달라. 동성애 서부영화라는 얘기는 가급적 빼놓고 말이다.
현: 그건 당신이 나에게 골프 접대를 하기 전에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리고 한국은 관객 수준이 매우 높아서 감독 인터뷰 따위에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칭찬하고 싶은 것은 배우들의 연기가 좋았다는 것이다.
리안: 동성애자가 아닌 배우들이 동성애자 연기를 하는 것은 할리우드에서는 아주 용감한 일이다. 히스 레저(에니스 역)와 제이크 질렌할(잭 역)이 아니었더라면 이 영화는 찍지도 못했다.
현: 그런 발언은 문제가 있다. 배우들이 연쇄 살인범이나 유괴범 혹은 강간범으로 나와서 훌륭한 연기를 펼쳤다고 해서 그들을 용감하다고 하지는 않는다. 현실에서든 영화 속에서든 간에 그들은 결국 이성애자로 남는 것이기 때문이다. 왜 꼭 동성애자 역할에 대해서만 용감하다고 해야 하나?
리안: 맞다. 진짜 용감한 것은 미국에서든 한국에서든 동성애자로 사는 것이다. 미국의 게이 커뮤니티는 내 영화가 실제의 동성애자들을 제대로 묘사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내 영화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자 문제를 우호적이고도 진지하게 토론하게 됐다. 한국에서도 이미 ‘왕의 남자’가 비슷한 효과를 낳았다고 들었다.
현: ‘왕의 남자’는 가장 빠른 시일 안에 1,200만명 관객을 돌파하는 신기록을 세웠다. 반면 우울한 일도 있는데, 정부가 스크린쿼터를 73일로 감축시킨 것이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한국 정부는 한국의 영화인들로부터 비판받고 있다. 한국 정부가 미국 영화산업 편을 들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잘못된 정책이 결과적으로 영화인들과 농민들을 서로 연대하게 만들었다.
리안: 한국 영화는 한국 경제를 닮았다. 빠른 시일 안에 성장했고 매우 활력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자랑스럽다.
현: 한국 관객에게 아부하는 소리로 들린다. 또, 당신은 수상식장에서 중국, 홍콩, 대만을 동시에 겨냥한 감사의 말을 했다. 하나의 중국이라는 것은 하나의 아시아와 마찬가지로 허구적인 게 아닌가? 당신의 수상 소감은 당신 영화가 중국에서 상영 금지된 것을 염두에 둔, 고도로 계산된 정치적 발언으로 내게 이해된다.
리안: 한국과 중국이 서로 다르고, 중국, 홍콩, 대만이 서로 다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당신과 내가 이렇게 영어로 말할 수밖에 없고 피부색 때문에 무시당하는 만큼 우리 아시아인들은 미국의 주류에 대해서 타자인 것이다.
현: 그렇지 않다. 당신은 영어를 아주 잘하고 나는 못한다. 당신과 같은 대만 출신인 허우샤오시엔 감독이나 차이밍량 감독의 작품이 당신 작품보다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할리우드 영화산업이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 세계 영화시장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반면 당신의 성공은 고유한 사회적, 문화적 정체성을 상당히 양보하면서 할리우드 상업영화의 관행과 타협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리안: 당신의 비평적 칼은 너무 날카롭다. 그 칼에 당신이 베일 수도 있다. 칼을 들고 싸우려 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사이 좋게 서로 껴안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현: 아니다. 당신은 한국을 잘 모른다. 한국에서 사람을 베고 있는 것은 정부다. 영화인과 농민만이 아니라 KTX 여승무원들과 같은 노동자도 베어버리고 있다. 또 한국에서는 다른 사람을 아무나 껴안아도 되는 직종이 따로 있다. 국회의원이 바로 그것이다.
리안: 모른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여기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영화를 찍어가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 미리 다 알고 시작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뭔가를 새롭게 알아가고 구체적으로 배우는 과정이다. 마찬가지로, 영화를 본다는 것도 뭔가를 알아가고 배우는 일 중 하나다.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할 것이다.
현: 멋있는 얘기는 당신 혼자서 다 한다.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빠뜨린 것을 묻고 싶다. 에니스가 잭과 결합하기를 꺼려 하는 이유로 에니스는 어려서 목격했다는 증오 범죄, 즉 자신의 고향에서 동성애자 카우보이가 잔인하게 살해당했다는 것을 들고 있다. 이것은 영화 속 스토리 공간 안에서 하나의 확정된 사실인가 아니면 단지 에니스 자신의 환상인가. 그리고 잭 죽음의 진상은 무엇인가?
리안: 그것은 관객이 보고 판단할 일이다. 또, 이런 부분의 서사적 의미가 모호한 것이 내 작품의 특징이라고 비평가들은 말하고 있기도 하다.
현: 한국에는 많은 영화제가 있다. 올해 부산이나 전주에 올 의향이 있는가?
리안: 바빠서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부산에 가게 되면 당신과 꼭 골프를 치겠다. 약속한다.
문화비평가 이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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