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정부의 2인자다. 역대 가장 강력한 2인자라고도 한다. 이념적으로는 온건 중도이기보다 한 쪽으로 강한 성향을 띤다. 강한 이념성을 자기의 트레이드마크로 내세우기도 한다. 덕택에 열렬한 추종자가 많지만, 반대 진영에는 강경한 입장을 굽히지 않아 적도 많다. 워낙 자기신념이 강해 상대방에게 뻣뻣하다거나 무례하다는 인상을 풍기기도 한다.
●독선·부적절한 처신 공통점
그런 그가 요즘 각종 의혹의 한가운데에 있다. 측근이 불법 로비 의혹을 낳고 있고 본인의 연루 가능성에 대해서도 말이 들린다. 휴일에 레저를 즐기다가 구설수에 올랐는데 그것을 즉시 명확히 해명하지 않고 쉬쉬하고 말을 바꾸다가 사태를 악화시켰다. 그 레저는 공교롭게 기업인의 정치인 접대 도구로 자주 사용되곤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권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더욱 추락하며 1인자인 대통령에게 큰 정치적 부담을 안기고 있다. 다가오는 선거를 염려해 그 2인자가 물러나야 한다는 소리가 정권 내부에서도 나왔다.
이 정도 이야기하면 이해찬 국무총리가 떠오를 것이다. 물론 그에게도 해당될 수 있겠지만, 미국 부통령 체니에 관한 이야기다. 정치적 영향력을 크게 발휘하지 않은 다른 부통령들과 달리 체니는 여러 정책사안에서 핵심적 역할을 맡아왔고 보수진영의 대부를 자처하며 부시 행정부를 보수 쪽으로 밀어왔다. 민주당과 진보진영을 신랄히 비판하는 악역도 마다하지 않아왔다.
그러던 그가 근래 여러 스캔들에 시달리고 있다. 이라크 사태와 관련한 정책 차원의 오판이나 보수 종교세력과 너무 가깝다는 이념 차원의 시비는 차치하더라도, 최측근인 전임 비서실장이 기밀누설죄로 기소된데다 체니가 뒤에서 사주했을지 모른다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체니는 주말에 로비스트 초청으로 사냥에 나섰다가 오발사고를 내 지인인 변호사를 중태에 빠뜨렸다. 오발은 실수겠지만, 정경유착의 의혹이 있는 사냥모임에 참석한 것이나 사고를 은폐하려 했다는데서 집중 비판을 받고 있다.
체니를 둘러싼 논란은 그 성격이나 구체적 상황에서 같은 2인자인 이해찬 총리 관련 논란과 매우 흡사하다. 그러나 큰 차이는 사퇴해야 한다는 목소리의 강도다. 한국에선 연일 언론의 포화 속에서 이총리의 사퇴론이 대세로 굳어져 결국 대통령의 사의 수용으로 이어졌다. 반면 미국에선 체니가 사임해야 한다는 주장이 아직은 사회 일각에서만 조심스레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날까? 한국인이 미국인에 비해 비판의식이 더 크거나 매정해서일까? 체니의 문제보다 이 총리의 문제가 더 심각해서일까? 이 어려운 질문들에 정답을 대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체니와 이 총리가 공통되게 2인자지만 상이한 과정을 거쳐 뽑혔고 상이한 권한을 가지며 이 상이함으로 인해 사퇴론의 강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선출-지명 차이가 운명도 다르게
미 부통령은 대통령과 팀을 이뤄 국민의 선택을 받아 선출된다. 그러므로 웬만하면 사임하란 말을 하기가 힘들다. 부통령의 사임은 좁게는 대통령, 넓게는 대의민주주의의 치명상이 되는 것이다.
1970년대 초 애그뉴처럼 명백하고 심각한 불법행위가 드러난 경우에만 극히 예외적으로 중도 사퇴할 뿐이다. 또 부통령은 별로 권한이 없다. 체니가 실세라지만 그의 정치력 덕택이지, 공식적으로 그가 가진 국정 책임은 거의 없다. 이 점 역시 국정을 위해 부통령이 사임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리 크지 않은 이유다.
우리의 총리는 경우가 다르다. 그는 국민의 의사가 아닌 대통령의 지명으로 자리에 오른다. 아울러 국정 전반에 걸쳐 엄청난 공식적 권한을 갖고 있다. 그런 총리가 복잡한 구설수에 오르고 여론을 악화시켜 대통령의 정치적 구상과 국정 운영에 공히 짐이 된 탓에 자연스레 사퇴론이 힘을 얻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임성호ㆍ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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