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를 분석하는데 있어서 어려운 점은 시간이라는 변수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건의 단기적인 효과와 중장기적인 효과, 표면적으로 느끼는 효과와 심층적인 효과는 전혀 다를 수 있다.
이 같은 현상 때문에 생긴 말이 전화위복이라는 말이다. 이 말이 단기적, 표면적으로는 재앙으로 보이는 것이 중장기적, 심층적으로는 오히려 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서구에는 정반대를 지칭하는 말이 있다.
‘위장된 축복’(disguised blessing)이라는 표현이다. 단기적, 표면적으로 보면 축복인 것 같은데 중장기적, 심층적으로 보면 재앙이라는 뜻이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복이 화로 변한다는 의미의 전복위화(轉福爲禍)라고나 할까?
●골프파문, 축복인가 재앙인가
이해찬 총리의 3ㆍ1절 골프파동이 당사자들의 주장과 달리 황제골프에다 내기골프였다는 것이 밝혀지는 등 일파만파로 커져서 수습이 어려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대망의 지방선거를 앞두고 최연희 의원의 여기자 성추행 사건으로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해있던 한나라당으로서는 쾌재를 부를 축복이다. 그러나 이 총리 골프사건이야말로 이같은 축복이 재앙으로 변해 전복위화가 되고 말 전형적인 경우이다.
이총리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최 의원은 사태의 수습을 위해 의원 직을 내놓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총리 사건이 터져 국민의 시선이 이 총리에게로 옮겨가자 사퇴 압력을 무시하고 잠적한 채 버티기에 들어 갔다. 사퇴를 하더라도 무소속으로 출마해 주민들의 심판을 받겠다는 이야기까지 들린다.
한심한 일이다.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최 의원이 사퇴하고 당이 국민 앞에 사과하고 근본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망하고 말 것이라는 초반의 위기의식은 사라지고 현실에 안주해 사태를 방관하고 있다.
최 의원이 탈당한 것과 관련해, 탈당한 사람에게 어떻게 사퇴를 요구할 수 있느냐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한나라당의 진수희 공보부대표와 여성의원들이 잘 지적했듯이 형식논리에 불과하다.
특히 한심한 것은 박근혜 대표이다. 박 대표는 11일 일본 방문을 마치고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최 의원 문제에 대해 “제가 국민들에게 사과했고 당이 할 수 있는 여러 조치들을 취했다”며 이제 의원직 사퇴 문제는 “본인이 판단해서 결정할 일”이라는 무책임하고 안이하기 짝이 없는 발언을 한 것이다.
당이 할 수 있는 여러 조치를 취했다니, 이재오 원내대표를 비롯한 당지도부, 나아가 박 대표 자신이 직접 나서 최 의원이나 그 가족을 만나 “분노하는 국민들을 생각해, 그리고 그 동안 몸담았던 당을 위해 살신성인의 자세로 사퇴를 해 달라”고 설득이라도 해봤는가? 전혀 그런 것 같지 않다.
박 대표와 한나라당이 기억해야 하는 것은 진 공보부대표가 잘 지적했듯이 최 의원이 탈당을 했지만 국민 누구도 탈당을 했기 때문에 최 의원이 한나라당과 무관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도 여성인 박 대표가 어떻게 이처럼 안이한 발언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나라엔 위장된 축복일뿐
한나라당은 불행히도(?) 그 동안 너무 복이 많았다. 1997년 대선 패배 후 눈물을 흘리며 변신을 약속했지만 김대중 정부의 각종 게이트 등 도덕적 파탄이 터져나오는 복된 현실에 안주하다 2002년 대선에서 또 졌다.
대선 패배 후, 그리고 탄핵사태 후 다시 피눈물을 흘리며 변신을 약속했지만 노무현 정부의 실정으로 당의 인기가 올라가면서 또 다시 그때의 아픔을 너무 쉽게 잊어버렸다.
한나라당은 이번에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이점에서 이 총리 골프소동은 한나라당에게 위장된 축복에 불과하다. 한나라당이 언제까지 ‘전복위화의 정당’으로 남을 것인지, 한심하기만 하다.
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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