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전 총리가 12일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의 지방선거 연대제의를 끝내 뿌리쳤다.
고 전 총리는 이날 정 의장과의 오찬 회동에서 “지방선거에서 정당차원의 관여는 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중도실용주의와 개혁세력 연대를 오랫동안 주장해왔지만 지방선거 차원의 정략적 연대와는 다르다”는 언급도 했다.
이는 우리당은 물론 민주당 국민중심당 등 어떤 정당과도 연대하지 않겠다는 의미이자 고 전 총리가 지방선거 이후에 승부를 걸겠다는 의중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지방선거 이후 큰 틀의 연대, 즉 정계재편을 노리고 있음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사실 고 전 총리의 지방선거 불참은 이미 예상됐다. 승패가 불확실한 지방선거에서 여당과 연대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너무 큰 모험이라는 판단은 고 전 총리 주변에서는 오래 전에 내려져 있었다.
정 의장도 이를 잘 알고 있었지만 고 전 총리로부터 비롯되는 애매한 상황을 조속히 정리, 여권의 전열을 정비하기 위해 이날 오찬 회동을 가졌다는 후문이다.
이날 오찬은 2시간 동안 진행됐으며 우리당 민병두 의원과 김덕봉 전 총리 공보수석만 배석했다. 민 의원과 김 전 수석은 언론 발표 내용을 놓고 신경전을 벌여 오찬 후 1시간이나 지나서야 결과를 공동으로 발표했다.
고 전 총리는 이날 인사말부터 정치권을 강하게 비판, 오찬 시작부터 긴장감이 흘렀다. 그는 정 의장에게 좋은 정치를 해달라는 덕담을 건넨 뒤 “민생을 우선으로 돌보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도록 잘 이끌어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이어 “정치가 국민을 걱정해야 하는데 요즘 국민이 정치를 걱정한다”며 “서민들은 하루살기가 고달픈데 성추행이니 골프니 하면서 정치권이 옥신각신 하는데 국민들이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며 여야를 모두 비판했다.
이에 정 의장은 “꽃샘추위가 지나면 훈훈한 봄이 온다”며 “정치권이 새 지평을 열기 위한 과도기적 진통”이라고 받아 쳤다. 정 의장은 또 “고 전 총리는 초대 총리로 참여정부의 문을 열어준 분이고 탄핵의 과도기를 잘 이끌어주었다”며 “어려움을 함께 극복했고 역사의 파고를 함께 넘었다”고 말했다. 일종의 공동 책임론을 제기한 셈이다.
정 의장은 특히 “앞으로도 거친 파도가 있을 것이다”면서 “고 전 총리도 같은 배를 타고 있으니 도와달라”고 동참을 요청했다.
그러나 고 전 총리는 “탄핵사태는 해소됐지만 정치적 리더십의 위기는 가시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정 의장이 앞장서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주기를 부탁한다”는 말로 동참 거절 의사를 피력했다.
박석원 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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