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한 게 홍어 뭐라고? 먼 말이여, 이 놈이 보배당께라.”
전남 신안군 흑산도 앞바다가 홍어 특수를 누리고 있다. 톡 쏘는 맛이 일품인 흑산 홍어는 예부터 귀한 탓에 큰 잔칫날에만 구경 할 수 있는 음식으로 인식된 지 오래다. 이 곳 홍어 특유의 찰진 맛과 쏘는 맛에 길 들여지면 다른 홍어에는 눈길조차 보내기 싫어진다. 그런 흑산도 홍어가 최근 대풍을 이루며 가격이 떨어지자 전국 각지에서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
9일 오전 9시 홍도 선적 9.8톤급 홍어잡이배 한성호(선장 이상수ㆍ41)가 바다로 미끄러지듯이 나갔다. 주위에는 벌써 홍어잡이 배 8척이 출하, 그물걷기에 여념이 없다. 그물이 올라올 때마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나온다. “징허게 많어부러, 야.”
오전 11시께 한성호 선원 5명도 4일전에 쳐놓은 주낙 중 첫번째 줄을 걷어 올렸다. 주낙은 보통 4줄이 한쌍이며 한 줄은 1,800㎙길이로 1시간 정도 작업량이다. 줄을 걷자 마자 암컷 홍어가 올라왔다. 암컷의 가격은 수컷의 두 배다. 오늘 조업은 감이 좋다며 선원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뒤따라 우럭, 물메기, 아귀, 가오리 만이 줄줄이 걸려 올라온다. 선장이 담배를 피워 문다. 선원 이승호(39)씨와 임동렬(40)씨도 묵묵히 걸려 올라오는 생선과 비닐포대 등 쓰레기를 분리하고 있다.
한시간 뒤 두번째 주낙을 걷었다. 배 우측 가장자리에 부착된 둘레 1.5㎙가량의 원통형 도르래 앞엔 선원 이씨와 임씨가 각자 갈고리를 든 채 나란히 서있다. 파란 바닷속에서 올라온 주낙줄에 시꺼먼 홍어가 보이면 이들은 각자 가지고 있던 갈고리로 도르래를 치면서 신호를 한다. 다른 선원에게 기쁨을 알리는 신호다.
이번에는 팔뚝만한 물메기와 비교적 값비싼 아귀까지 올라와 노란박스를 가득 채웠지만 기다리는 홍어는 신통치 않다.
애가 타는지 조타실 창문으로 고개를 내민 채 한시도 바다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선장이 “온당께”라고 소리를 지른다. 거짓말처럼 묵직한 홍어가 올라온다. “뭐 한다냐, 니그들 정신 차리랑께.” 선장의 소리에 혹시나 홍어를 바다에 빠뜨리기라도 할 까봐 갈고리를 든 선원들은 올라오는 홍어를 힘차게 내리 찍어 배위로 올린다.
주낙을 정리하고 홍어를 얼음과 섞으면 1차 작업은 종료다. 이제 점심시간이다. 돼지고기를 두껍게 썰어넣은 김치찌개, 갓 잡아올린 물메기 횟감을 안주 삼아 소주를 들이킨다. 망망대해에 잠시 일손을 놓고 즐겁게 식사하는 이들에겐 밥맛이 그야말로 꿀맛이다.
다섯번째 작업이 시작됐다. 선장은 조타실 창문에서 선원들에게 작업지휘를 한다. 주낙을 쳐다보지만 1번(최상품)은 오지 않고 4, 5번만 간혹 잡힌다. 심심한 선장은 인근 홍어잡이 배들과 무선송수신기를 통해 교신을 주고 받는다.
“형님, 많이 잡히요?” “어째 오늘은 신통치 않는디.” 흑산수협에서도 교신이 들어온다. “위판장에는 언제 올건가?” “아따 이것 잡아서 들어가것소.”
노을이 지는 6시께 7번째 주낙줄에 마름모꼴의 암컷 상품들이 여러마리 딸려 나왔다. 오후 7시40분 여덟번째 줄까지 당긴 끝에 50여마리 수확을 올렸다. 최상품은 얼마 안되지만 지난 시절에 비교하면 풍어고 최근을 따져도 기본 이상은 한 셈이다.
선장 이씨는 “(기자를 가리키며) 배에 외지 손님이 오면 홍어가 올라오지 않는다”고 볼멘 소리를 한다. 요즘 워낙 많이 잡히다 보니 양에 안 찬다는 표정이다.
홍어는 암컷을 기준으로 ▦1번(8.2㎏) ▦2번(7.2㎏) ▦3번(6.2㎏) 등으로 세분화해 판매된다. 1번 최상품은 흉어기때 100만원 이상 나갔지만 최근에는 위판가격 기준 32만원에 판매되고 있으며 4㎏이하는 7만∼8만원의 헐값(?)에 거래되고 있다.
선장 이상수씨는 “해경에서 중국 쌍끌이 어선을 집중 단속하면서 어획량이 많아 졌다”면서 “최근처럼만 잡혀준다면 흑산 홍어가 미식가들의 음식이 아니라 일반 대중음식도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안=박경우 기자 gw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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