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집 안마당, 소나기가 지나간 뒤 다시 해가 들자 암탉 한 마리가 부리를 다듬으며 한가롭게 노닌다.
시인 이정록(42)은 그 평화로운 풍경의 전부를 가뜬히 들어 암탉의 가녀린 부리 위에 얹는다. “천둥 번개에 비틀거리던 하늘이 그 부리 끝을 중심으로 수평을 잡는다.” 이제 이 균형의 세상은 암탉 가족들의 행복으로 충만한 듯하다.
“병아리들이 엄마 아빠 섞어 부르며 키질 위 메주콩처럼 몰려다닌다.” 그리고 이어지는 연. “모낸 무논의 물살이 파르라니 떨린다 온몸에 초록침을 맞은 하늘이 파랗게 질려있다 침 놓은 자리로 엄살엄살 구름 몇이 다가간다 개구리 똥꼬가 알 낳느라고 참 간지러웠겠다 암탉이 고개를 끄덕이며 무논 쪽을 내다본다” (‘비 그친 뒤’에서) 논물에 이렁저렁 잠긴 개구리알을 보고 고갯짓하는 암탉의 내면을 끌러 냉엄한 먹이사슬의 굴레를 떠올릴 수도 있겠으나, 시인은 그 너머, 곧 산란의 수고로움에 대한 위로부터 챙긴다.
(또 그 세상의 균형이 암탉의 부리로 지탱된 위태로운 균형이라는 사실도, 일단은 덮어두자) 그것은 아이의 마음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어쩌면 어른이 되려고 애써 버려버린 감성이다.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의자’(문학과지성사, 6,000원)는 그 마음자리를 선명한 색감의 수채화로 복원한, 화첩 같은 책이다.
‘햇살이 모이는 자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눈도 녹지 않았는데/ 어찌 그리 양달을 잘 아시는가/ 나물을 뜯으려고 바구니를 내려놓은 자리/ 거기다, 그곳이 햇살의 곳간이다” 시인이 찾아낸 ‘햇살의 곳간’은 새순 어루만지는 할머니의 등이고, 그 등에 업힌 손자의 터진 볼이다. 아이의 엄마는 어디 갔을까. “엄마 잃은 생떼의 입술이 햇살의 젖꼭지를 빤다” 가여운 손자를 비추는 햇살 자리의 반대편은 응달이다.
‘할머니의 숯검댕이 가슴’이고, “남은 빛을 (나물 캐는) 칼날에다 부려놓고 방금 새순을 바친 풀뿌리로 스미”는, 그 응달이다. “우글거리던 햇살의 도가니, 그 밑자리로/ 응달은 겨울잠 자러 가는 실뱀처럼 꼬리를 감추”는데, 햇살 젖을 담뿍 빤 “아이가 갑자기 제 트림에 놀라 운다/ 아기의 뱃속 어딘가에서/ 빙벽 하나 무너져내렸는가” (아기의 뱃속에도 응달이, ‘빙벽’처럼 굳고 찬 슬픔이 있었던가 싶어 움찔 놀라게 되지만 그것도 덮어두자.)
시인은 그렇게 대상을 정밀하게 응시한다. 그리 하면서, 존재의 연원을 그 형식과 내용과 가치를 섬세하게 돋운다. “진창에 처박힌 벼 이파리의 안간힘 때문에/ 몸살을 앓는 봄 논,/ 물은 저 떨림으로 하늘을 품는다/(…)/ 끝내/ 무논의 물결처럼 세상의 떨림을 읽어내기를/ 써레처럼 발목이 젖어 있기를”(‘물끄러미에 대하여’)
나이가 든다는 것은 “머리맡이 어지러워지는 것”이다. 기저귀가 놓이고, 축복의 말씀이 놓이고, 달뜬 밀어의 편지가 놓이고, 혁명시집과 입영통지서가 놓이던 자리, 그리고 훗날 링거 줄이 내려오고 금식(禁食) 팻말이 나붙을 자리가 머리맡이다. 시인은 “쓸쓸하다는 것은 내 머리맡에서/ 살얼음이 잡히기 시작했다는”것이고, “진리는 내 머릿속이 아니라/ 내 머리맡에 있던 따뜻한 손길과 목소리”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고향 집처럼 푸근하고 자궁처럼 아늑한 세계를 동경(憧憬)해온 것인가 보다. 또 그래서 “잠자리가 물의 거죽을 집었다 놓았다 하는 것”이 목욕하는 것이 아니라 “물속에서 학배기(잠자리 애벌레)로 살던 그가 제 옛집의 닫힌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라 동정(同情)하는 것인가 보다.
경험상 가망 없는 회귀의 꿈은 누추한 현실이 비릊는 것 아니던가. 그렇다면 혹시, 그가 그려온 그 동화 속 세상처럼 투명하게 햇살 받은 수채화의 공간이, 이 세상의 응달을 내비치기 위한 역설의 그림은 아니었을까. 위태로운 평화의 균형도, 암탉의 욕망도 아이의 감춰진 슬픔처럼 햇살 속에 가려진 아나몰포시스(歪像)의 그림은 아니었을까.
▲ 주름살 사이의 젖은 그늘
백 대쯤
엉덩이를 얻어맞은 암소가
수렁논을 갈다 말고 우뚝 서서
파리를 쫓는 척, 긴 꼬리로
얻어터진 데를 비비다가
불현듯 고개를 꺾어
제 젖은 목주름을 보여주고는
저를 후려 팬 노인의
골 진 이마를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그 긴 속눈썹 속에
젖은 해가 두 덩이
오래도록 식식거리는
저물녘의 수렁논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