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시 개그, 허무 개그, 개그 코미디, 개그 콘서트…. 웃겨야 산다는 명제가 당연시 되고있는 한국에서 서양적 익살의 원류를 찾아 가는 연극 두 편이 봄을 재촉한다. 극단 꼭두의 ‘상당한 가족’, 동숭아트센터의 ‘노이즈 오프’. 모두 국내 초연작이다.
“안식을 얻었다. 돌아가셨다. 운명하셨다. 생을 마감했다. 죽었다. 속된 말로 뒈졌다. 갔다. 끝났다. 쫑났다. 꼴까닥! 꽥!” 장모의 죽음을 알리는 대목이다. 그 말에 사람들은 탄식을 합네, 기절을 합네, 한바탕 전쟁을 벌인다. 매사 그런 식이고, 진지함이란 눈 씻고 봐도 없다.
‘상당한 가족’은 새벽 4시에 발생한 갑작스런 소동의 희극성을 극대화시킨다. 별 것 아닌 일로 팔을 걷어부치며 티격대던 부부에게 장모가 운명했다는 비보가 날아들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진다. 결혼한 지 2년도 안 된 남편은 아내를 놔둔 채 질펀한 파티로 싸돌아 다니며 예술가입네 한다. 등장인물들은 서로 핏대를 올리고, 남자들은 누구랄 것 없이 음탕기가 넘친다. 부인이 남편한테 퍼붓는 “색골! 색마! 변태!”라는 부르짖음은 결혼 생활의 이면에 대한 폭로이다.
1908년 프랑스에서 선 뵌 이 무대는 15~16세기 전성기를 누렸던 소극(笑劇ㆍfarce)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소극이란 관객의 웃음을 유발하는 극적 장치를 최대화시켜 만든 연극. 터무니 없는 상황과 장난기로 가진 자들의 허세를 즐겁게 폭로하는 분출구로서 기능했던 장르다. 원래는 수준 높은 해학을 의미하는 코미디, 웃음을 위한 즉흥 대사나 우스개를 뜻하는 개그의 중간쯤에 위치하는 양식이다.
이 무대는 왕성한 활동으로 후배의 귀감이 되고 있는 배우 전무송(65)이 희극 배우로의 변신을 시도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또 배우인 딸 현아(34), 아들 진우(31)가 모처럼 함께 무대에 오르고, 사위인 김진만(37)씨까지 연출로 가세한다. 조르주 페도 작. 17~4월16일 사다리아트센터 세모극장. 화~목 오후 7시30분, 금ㆍ토 4시30분, 7시30분, 일 3시. (02)741-6779
이제는 엎치락뒤치락 코미디, 슬랩 스틱이다. 1982년 영국에서 초연된 ‘노이즈 오프’는 현재 브로드웨이를 비롯, 38개국에서 장기 상연중인 작품. 연극을 공연중인 어느 극단의 이야기다. 국내에서는 비디오로 출시되고 TV로도 방영됐지만, 비로소 연극 무대에서 진짜 모습을 만난다. ‘시끄러운 빈 집’(낫씽온)이라는 희극을 공연중인 극단의 이야기다.
6m 높이의 2층 집 세트를 정반대로 뒤집어 배우들이 뒷면에서 퇴장 이후의 모습을 연기한다거나 제목대로 매번 유리창이 깨지는 등의 무대는 지금껏 느끼지 못했던, 연극만의 매력을 전한다. 극단 민예극장 대표이자 배우인 정현의 변신, 묵직한 배우의 이미지가 강한 송영창의 코믹 연기, 날렵한 몸놀림이 인상적인 안석환의 한층 더해진 희극성 등 배우 군단의 저력이 만만찮다. 프라이언 작, 김종석 역ㆍ연출. 4월19~5월28일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경륜 갖춘 배우들의 본격 희극 무대에 대해 연극평론가 신현숙 씨는 “코미디를 선호하는 풍토는 역으로, 지금이 힘든 시대임을 말해 준다”며 “팽팽한 긴장 속에서 웃음으로 해방되고자 하는 욕구의 발로”라고 말했다.
장병욱기자 aj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