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소 네팔과 한국 간 문화교류를 위한 다리를 놓고 싶은 꿈을 갖고 있었다. 그러던 중 미디어스쿨이라는 단체와 인연을 맺어 네팔과 한국의 학생들 간에 문화교류를 도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한국 학생들은 모두 대안학교 학생들이었다. ‘대안학교’라는 말이 생소했던 나는 주위 친구들에게 대안학교 학생들에 대해 물어보았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대안학교의 학생들을 문제가 있는 아이들, 이른바 ‘문제아들’이라고 표현했다.
●"혹시…" 걱정은 편견
걱정과 기대를 안고 대안학교 학생들을 처음 만나던 날, 아이들에 대한 나의 인상은 ‘왜?’라는 질문이 많은 아이들이었다. 일어나서 자기소개를 하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어떤 아이는 “왜 일어서야 하나요? 그냥 앉아서 하면 안될까요?”라고 서슴없이 말하였다.
나는 너무나도 솔직하고 당돌한 아이들의 이러한 행동을 보고 보름간이나 네팔에서 함께 생활해야 할 일에 대해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걱정은 편견에 불과했다.
어른들도 힘들어 하는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던 중 한 학생이 다쳐서 더 이상 함께 갈 수 없는 상황이 닥쳤다. 다친 학생의 안전이 걱정되던 나와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회의를 해서 다음 행로에 대해 결정하도록 했다. 그 때 결정을 내린 아이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우리가 함께 트레킹 할 때 검비르 선생님이 ‘You go!'라고 외치면 우리는 'We go!’라고 대답했잖아요. 저희는 끝까지 함께 갔으면 좋겠어요. 다친 친구와 모두가 함께 내려갔으면 좋겠어요.” 이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울컥했다. 끝까지 가고 싶은 욕심이 있었을 텐데도 아이들은 친구를 위해 함께 내려갈 결정을 한 것이다.
트레킹이 끝나던 날, 아이들은 헤어져야 할 포터들에게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볼펜 하나라도 주려고 하면서, 쉬지도 못하고 또다시 내일은 누구의 포터가 되어 짐을 지고 힘들게 산을 오르겠냐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한 아이들의 모습은 포터들의 생활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고마움을 몰랐던 나를 비롯한 어른들의 이기심과 무감각을 반성해 보게 하였다.
●남 배려하는 마음 못잊어
네팔의 학생들과 만날 때도 이 아이들은 손짓 발짓으로 한국의 문화를 알려주고 네팔의 문화를 배우려고 노력했다. 한국보다 경제적으로 떨어지는 네팔 사람들에게 으스대기 보다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마스떼’라는 인사를 아끼지 않았다. 네팔의 문화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내가 만난 아이들은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 아니라 ‘문제를 아는 아이들’이었다.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숨김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졌고, 또 자신이 느낀 바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고 행동했다. 굳어진 어른들에게 끊임없이 문제를 내놓으며, 어른들이 곤란해 하는 문제를 인간적으로 풀어낼 줄 아는 이 아이들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소중한 이들이었다.
검비르 만 쉬레스터 네팔인ㆍ예띠인터내셔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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