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을 늘려 덩치부터 키우고 보자는 은행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대기업과 우량 중소기업의 ‘탈(脫)은행화’로 대출시장은 이미 병목현상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한정된 파이를 쟁탈하기 위한 은행권의 경쟁이 전쟁수준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지나친 여신경쟁이 리스크를 높여 오히려 수익 악화의 화근이 되는 ‘승자의 재앙’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경고이다.
지난해까지 가계대출 경쟁에 열을 올렸던 은행권은 최근 중소기업 대출에서 격전을 치르고 있다.
8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대기업 대출은 줄어든 반면, 중기 대출은 지난해 같은 달(2,500억원)의 10배 이상인 2조6,000억원이나 늘어났다. 올 들어 두 달 만에 5조7,000억원이 급증했는데, 이는 작년 전체 중기 대출 증가액(11조원)의 절반에 달하는 것이다.
미래에셋증권 한정태 연구원은 “국내 중기 대출 시장 규모는 20~30조원으로 추정되는데, 시중 은행들의 올해 목표를 보면 60~70조원에 달한다”며 “대출에 따른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자산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가격파괴의 출혈경쟁까지 나타나고 있다. 강권석 기업은행장은 최근 “은행권의 중기 대출 경쟁은 역마진을 감수할 정도로 과열로 치닫고 있다”며 “이런 추세라면 과거 카드대출과 같은 심각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시중은행의 한 지점장도 “장사 좀 한다 싶은 업체는 대출이 필요 없다고 하고, 돈 쓰겠다는 곳은 대출해주기가 겁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손해보고 돈 빌려주고, 안 빌려줘야 할 데까지 대출이 나가고 있는 셈이다.
가계대출에서도 작년 10월 이후 콜금리가 세 차례나 인상됐지만 은행들은 가산금리를 낮추거나 할인금리를 높이는 방식으로 주택담보대출을 소폭 인상하는 데 그쳤다.
이에 따라 금융감독원은 은행의 ‘군집적 자산운용 행태’로 올해 순이익률이 하락세로 돌아설 것이라며 경고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날 금감원에 따르면 작년 사상 최고의 순이익에도 불구하고, 은행의 수익창출 능력을 나타내는 영업이익률은 작년 말 3.16%에서 2.98%로 하락해 미국 평균치(5.44%)에 크게 뒤졌다.
특히 비이자 부문의 이익창출 능력을 보여주는 비이자 이익률은 0.57%로 미국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김중회 금감원 부원장은 “대출자산의 성장이 한계에 직면하면서 은행들이 금융복합상품 판매 등 비이자 부문으로의 수익구조 전환해야 하지만, 여전히 취약한 상태”라고 말했다.
금융연구원 김우진 연구위원은 “작년부터 경기가 살아나고 있기 때문에 올해까지는 과당경쟁의 심각성을 은행들이 실감 못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경기회복 속도가 둔화할 1~2년 후에는 지금의 과당경쟁이 은행의 수익성이나 경기 진폭에 상당한 후유증을 초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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