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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진의 미디어비평] 아나운서가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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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진의 미디어비평] 아나운서가 사라지고 있다

입력
2006.03.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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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전 MBC 아나운서국장이 대학 교수가 되면서 방송사를 사직했다. 김주하 ‘뉴스데스크’ 앵커는 3월부터 뉴스 마이크를 접었다.

두 사람은 여론조사에서 대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남녀 방송인으로 꼽힌 적이 있었고 많은 젊은이들이 역할모델로 삼았던 ‘스타’이다. 손석희 교수는 잠시 기자로 전직했다가 다시 아나운서로 돌아온 경우이고, 김주하 앵커는 재작년 기자로 전직한 ‘전’(前) 아나운서다.

두 사람의 퇴장을 보면서, 나는 ‘아나운서’라는 이름이 사라지고 있음을 발견한다. 물론 두 사람이 영원히 TV를 떠나는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 ‘아나운서’ 꼬리표를 달지는 않을 것이다. 뉴스는 앵커가, 오락프로그램은 MC가, 그리고 스포츠중계는 캐스터가 진행하는 오늘날, 아나운서는 과연 누구인가?

요즘 가장 인기 있는 방송인 중 한 명이 노현정 아나운서다. 냉정하고 차분하게 오락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호감을 준 듯하다. 강수정 아나운서도 인기인 대열에서 뺄 수 없다. 연예인들과 어울려 춤도 추며 오락프로그램을 이끈다. 둘은 아나운서 중 제일 ‘잘 나가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최근 강수정 아나운서가 라디오에서 후배를 질책하는 발언을 했다. 신입 아나운서가 자기는 예능프로그램을 하지 않겠다며 노현정, 강수정 아나운서를 불쌍하다고 표현했다는 것이다. 오락프로그램 진행을 동경하는 이들과 그들을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함께 아나운서실에 있는 것이다.

지금도 많은 대학생들이 천문학적 경쟁률을 뚫고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시험 준비를 한다. 그들이 머릿속에 그리는 아나운서 상은 어떤 것일까? 대학원 수업에서 현직 아나운서가 보고서를 발표한 적이 있는데, 아나운서는 ‘지적 소양을 갖춘 만능 엔터테이너’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남이 써준 대본을 또박또박 읽어나가면 되던 1970년대식 아나운서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아나운서 지망생들을 보고 있노라면, 아나운서가 지적인 연예인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투철한 저널리스트 의식은 버겁게 느끼지만 소위 ‘딴따라’가 되기에는 용기와 끼가 부족한 이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성경환 MBC 신임 아나운서국장은 아나운서가 오락프로그램을 외면할 수 없는 시대라고 말한 바 있다. 동의한다. PD들에게 오락프로그램의 진행자로 아나운서를 선정해달라는 주문도 했다. 할 수 있는 말이다.

아나운서가 개그맨 이상으로 오락프로그램을 잘 진행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같은 논리로, 기자보다 더 훌륭한 취재보도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여전히 아나운서로 총칭할 이유를 대기는 군색하다. 아나운서들 하나하나는 매우 능력 있는 개인이다.

이들의 ‘지적 능력’은 정해진 대본을 앵무새처럼 읽기만 하는 역할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 중 애초부터 경찰서를 출입하는 기자나 웃음을 위해 스스로 망가지는 개그맨의 역할을 자처한 이들도 없다.

아나운서의 정체성 위기를 타파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제2의 손석희나 김주하를 꿈꾸는 사람들은 시사 전문 진행자로, 제2의 노현정이나 강수정을 원하는 이들은 예능 전문 진행자로 선발하는 것이다.

그리고 시사 진행자에게는 저널리스트적 소양을, 예능 진행자에게는 엔터테이너적 소양을 교육시켜야 한다. 물론 스포츠 캐스터나 리포터 역시 별도로 선발해 적절한 훈련을 시킬 수 있을 것이다. 적합한 선발방식이 모두 다르다는 사실을 모르는 방송 관계자는 없다.

김주하 앵커의 후임을 선발하기 위해 두 명의 아나운서와 다섯 명의 기자가 오디션을 봤다고 한다. 왜 기자가 아닌 아나운서가 선발됐느냐며 비판하는 이들도 있지만, 직종에 대한 비판은 온당치 않다.

어떤 기자보다도 뛰어난 저널리스트적 자질과 적절한 전달능력이 있는 개인이라면 문제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문은 남는다. 도대체 훌륭한 ‘아나운서적 자질’이란 무엇인가?

연세대 영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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