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박래부 칼럼] 늦어지는 DJ의 북행열차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박래부 칼럼] 늦어지는 DJ의 북행열차

입력
2006.03.07 11:25
0 0

백범의 기자회견은 비장했다. “북행을 했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통일 독립을 위해 끝까지 싸웠다는 것을 3천만에게 전해주기 바란다.” 1948년 4월15일의 일이다.

스스로 북행 자체가 안전해 보이지는 않았던 듯하다. 4일 뒤, 말리는 시위 군중을 뒤로 하고 북으로 떠난다. 시위대에게 남긴 연설에도 불안감이 짙게 배어 있다. “북한 공산당이 나를 미워하고 스탈린 대변자들이 나를 시베리아로 끌고 가도 좋다. 북한의 빨갱이도 김일성도 다 우리와 같은 조상의 피와 뼈를 가졌다. 이 길이 마지막이 될지 어떨지 몰라도, 이북의 동포들을 뜨겁게 만나 보아야겠다.”

●연상되는 백범의 평양행

북에 간 백범은 위험하지 않았다. 돌아와서 그는 보고했다. “피차 남북의 우리 동포는 통일적으로 영구히 살아나가야 된다는 기초를 튼튼히 닦아 놓았다.

다시 한두번이라도 내왕하면 목적은 달성하리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위험은 남으로부터 왔다. 1년 뒤 백범은 우익세력 안두희의 저격을 받아 운명했다.

DJ의 방북은 여러 면에서 백범의 북행을 연상시킨다. 2000년 방북부터가 반세기 전 백범의 행적과 이어지는, 분단사상 일대 사건이었다. 당시 공동선언에는 자주적 통일과 1국가 2체제의 통일방안 협의, 이산가족 문제 해결, 남북교류의 활성화등이 구체적으로 표명돼 있다.

지금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이 공동선언과 옛 ‘햇볕정책’의 충실한 실천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개성 공업단지가 가동됐고, 금강산 여행 외에도 남북 간 철도ㆍ도로가 연결되는 적지 않은 가시적 성과가 있었다.

정서적으로도, 설령 남북관계가 일시 불편해지더라도, DJ의 방북 이전처럼 불안하지는 않다. 2000년 이전이 ‘준(準) 전시’였다면, 이후는 ‘준 평화시’라고도 말하고 싶다.

백범이 “한두번이라도 더…”라고 했듯이, DJ도 다음달 재방북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DJ의 방북이 5월 지방선거를 겨냥한 ‘북풍’이라며 맹렬히 반대하자, 6월로 연기됐다. 남북관계를 지방선거의 유ㆍ불리에 비견하는 안목이 좁아 보인다.

전여옥 의원의 ‘치매’ 발언은 치졸함의 극치다. 그는 당 행사에서 “김정일이 공항에서 껴안아 주니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치매든 노인처럼 얼어서 있다 합의한 게 6·15 선언”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 말은 발언자의 인격과 교양을 넘어선다. DJ의 방북과 그 성과에 흠을 내고 싶어 하는, 또한 재방북에는 더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수구세력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낸 것이다. 그것은 통일노력에 대한 반감이며, 또한 백범이 겪은 비극과 닿아 있는 정서이기도 하다.

연로한 DJ의 6월 열차방북은 조국통일을 위한 그의 마지막 큰 기여가 될지도 모른다. 사실 그의 북행에는 기대 만큼이나 우려도 있다. DJ의 방북에 따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이 그만큼 실현되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공동선언에도 명시된 그의 방남은 한반도에서 DJ의 방북을 능가하는 평화적 상징성을 지니게 될 것이다.

그러나 DJ의 방북을 삼고초려처럼 긍정적 의미로도 생각해 본다. 원래 삼고초려는 심리적ㆍ실제적으로 우월한 편에서 구사하는 정치적 결단이자 행동이다.

●노 대통령의 기회는 없나

또 한 가지 우려는 DJ의 방북으로 노 대통령의 방북이나 그의 남북정상회담도 영영 기회를 잃고 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방북이나 정상회담이 가져올 경제적ㆍ심리적ㆍ평화적 효과를 언급하는 것은 사족에 지나지 않는다. 노 대통령은 최근 ‘남은 임기 2년도 시끄러운 기간이 될 것’이라고 농담 같은 진담을 한 바 있다.

노 대통령에게 기대되는 덕목은 현실에 매이지 않은 발상과 부단한 개혁의 추진이었다. 2년 간 남북관계에서도 햇볕정책의 유지만 할 것이 아니라, 백범과 DJ에 이어 획기적인 일보를 내딛기 바란다.

박래부 수석논설위원 parkrb@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