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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눈물 젖은 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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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눈물 젖은 빵

입력
2006.03.07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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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그 날도 신문지에 생선을 싸 왔다. “또…?” 부인의 짜증에 남편은 웃었다. “누가 맛 좀 보라고 해서….” 부인이 교사남편의 ‘생선 배달’을 이해한 것은 월급날이었다. 몇 천원 봉급이 반토막 나 있었다.

고기잡이하는 학부모가 기성회비 대신 생선을 놓고 갔으며, 교사는 쥐꼬리 월급에서 몇몇 아이들의 기성회비를 대납해 왔던 것이다. 졸업식 날 몇몇 학부모가 또 생선을 들고 오는 통에 동네에 알려졌다. 교사는 생선을 가져오지 않아도 졸업장을 준다는 말을 미리 못한 게 미안했다. 1960년대 한 어촌 학교의 실화다.

■살이 터질 듯한 추위. “셔츠만 입고 운동장에 집합!” 체육교사의 불호령은 여전했다. 한 아이가 교복차림으로 운동장에 섰다. “셔츠만 입으라니까!” “…. 만년셔츠도 괜찮나요?” “무슨 셔츠든, 빨리 윗도리 벗어!” 아이의 맨몸이 발갛게 변하고 있었다.

한 벌 뿐인 내의를 바깥일 하는 홀어머니를 위해 벗어놓고 등교했던 것이다. “…. 교복 다시 입어라.” 교사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제자의 사정을 너무나 몰랐다는 자괴감을 주체할 수 없었다. “앞으로 너는 체육시간에 교복을 입어도 좋다.” 급우들도 울었다. 방정환의 동화 <만년셔츠> 내용이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Wer nie sein Brot mit Tränen aß)과는 인생을 얘기하지 말라.’ 자신의 인생관이 형성되는 과정을 묘사한 괴테의 장편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에 나오는 말이다. 귀족 출신의 그는 배고픔을 겪은 적이 거의 없었지만, 한 노인의 탄식을 통해 자신의 통찰을 표현했다.

‘눈물 젖은 빵…’은 19세기 초 서민들의 가난이 만연했던 유럽의 화두가 됐고, 동시대의 슈베르트와 슈만, 리스트를 거쳐 20세기 루빈슈타인에 이르기까지 가난한 음악가의 영감을 돋워 그들의 작품 속에 찬란하게 인용되고 있다.

■수업료를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학생의 졸업장을 교무실에 인질로 잡아 놓고 돈을 마련해 와서 졸업장을 찾아가라고 한 선생님들이 있었다. 수업료를 내지 않으면 등교를 해도 결석처리되고, 그래서 졸업이 안 되니 졸업장을 못 준다는 것이다. 일부 교육청은 이를 조례로 제정할 계획이라고 한다.

가난한 학생과 학부모들의 사정은 이해하지만 일부러 수업료를 떼먹는 경우가 있어 어쩔 수 없다니 기가 찬다. 빈내오사(貧乃吾師ㆍ가난은 나의 스승)라고 했다. 그런 교사, 그런 졸업장 필요 없다. ‘눈물 젖은 빵’을 스승으로 모시자.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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