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상(32)씨가 1998년 발표한 사진조각 연작 ‘데오도란트 타입’은 기성 조각계에 일종의 충격이었다.
청동이나 목조, 석조 같은 묵직한 전통 재료에 비해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벼운 사진 인화지로 만든 조형물이 조각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은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실물 크기로 찍은 수백 장의 사진을 정교하게 이어붙인 인체 조각은 이미지가 실재를 대체하는 현대사회의 속성을 절묘하게 패러디하면서 조각의 현대적 지평을 확장시켰다는 평가를 끌어냈다.
사진 조각과 2003년 발표한 평면 조각 ‘더 플랫’ 연작을 통해 사진과 조각의 현대적 결합을 시도하면서 미술계 영파워의 선두주자로 떠오른 권씨가 3일부터 천안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세번째 연작 ‘더 스컬프쳐(조각)ㆍThe Sculpture’를 선보이고 있다.
이전의 작품 11점과 함께 소개되는 조각 연작의 대표 작품 2점은 모두 청동을 재료로 썼다.
전작들을 통해 조각의 물성과 재료에 의문을 제기했던 작가는 이번에는 다시 전통재료로 회귀하면서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스스로의 문제 의식을 배반한 것처럼 보인다.
“이전의 사진을 이용한 작업들이 재료에 대한 도전이라면 이번 청동작업은 조각의 소재에 대한 도전”이라는 작가는 “과연 로댕이 오늘날 살아있다면 어떤 작업을 만들어냈을까가 주된 모티브였다”고 말한다.
제 1전시장 한가운데 거대한 기념비처럼 자리한 작품 ‘조각 2’는 길이 4m, 폭 2m가 넘는 세계 최고급 스포츠카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다.
이 유명한 스포츠카를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작가는 인터넷을 통해 이미지를 다운받고 스티로폼으로 모형을 만든 뒤, 석고를 뜨고 청동 주물을 만들어 그 위에 조각가의 터치를 더하고 오렌지 색을 입혀 거대한 가마니에서 구워냈다.
2전시장에 전시된 슈퍼 바이크 ‘듀카티 996’(조각5) 역시 같은 방식을 사용하면서도 바퀴와 핸들을 빼고 토르소만을 제작, 좀 더 조각적인 아우라를 갖췄다.
이전의 작업들이 이미지 복제 시대의 자화상(데오도란트 타입)이거나 고도 소비문화에 대한 패러디(플랫 연작)였던 데 비해 서사는 약해보이지만 작가의 대답은 담담하다. “작가는 동시대인들이 원하고 꿈꾸는 것을 대신 풀어주는 사람일 뿐이다.”
그는 지난해 아라리오갤러리가 파격적인 조건으로 영입한 전속작가 8인중 한 명으로, 그들중 처음으로 개인전을 갖는다. 4월9일까지.
(041)551-5100
이성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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