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총리 거취 문제를 둘러싼 열린우리당 분위기는 싸늘하다 못해 찬바람이 돌 정도다.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기 어렵지 않느냐”는 쪽이 대체적 흐름이다. 대놓고 말만 못할 뿐 내심 사실상 사의를 표명한 이상 이 총리 스스로 사퇴도 결심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동정론도 없지않지만 묻히는 분위기다.
지도부부터 심상치 않다. 정동영 의장은 5일 기자간담회에서 “정치인과 공직자는 물을 가득 채운 양동이를 머리에 이고 가는 심정으로 국민을 섬기고 매사에 조심해야 한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당과 나라의 기강을 확실히 세워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론을 강조한 것 같지만 행간에 이 총리 사퇴가 불가피하지 않느냐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 총리가 사퇴까지 가야 하느냐”는 거듭된 질문에 정 의장이 “거취를 내가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면서도 “제가 드린 답변 속에 충분히 (대답이) 담겨 있다”고 말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김한길 원내대표도 이 총리의 사의표명에 대해 “안타까운 일이다. 국민 여론을 십분 감안한 결정이라고 이해한다”고 밝혔다. 정 의장과 마찬가지로 사퇴쪽에 무게가 실려있다. 앞서 정 의장과 김 원내대표 등 핵심 지도부는 3일 저녁 총리공관에서 이 총리를 만나 대국민사과의 필요성 등을 전했다.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은 일반 의원도 마찬가지다. 당직을 맡고 있는 한 의원도 “당의 공식 입장은 없지만 이번 기회에 사퇴해 줬으면 하는 의원이 다수”라고 전했다.
이처럼 당내에 이 총리 사퇴론이 커진 것은 지방선거의 영향이 크다. 비난여론을 방치할 경우 눈덩이처럼 여론이 악화돼 선거에 악재가 될 것이란 우려다.
한나라당이 최연희 의원 성추행 사건으로 몰매를 맞는 때에 이 총리 때문에 한나라당에 역공의 빌미를 주고있다는 불만도 상당하다. 한 재선의원은 아예 “이 총리가 당에 부담을 주고 국민들에게 좋지 않은 이미지를 준 것이 한 두 번이냐”며 “윤상림씨와의 골프 회동, 한나라당 ‘차떼기 당’ 발언 등 누적돼 왔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물론 “이 총리의 행동은 잘못이지만 과연 혼란을 무릅쓰면서 총리직까지 내놓아야 하는 사안인지는 숙고해 봐야 한다”(우원식 의원) “이 총리를 과도하게 매도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염동연 사무총장)는 등의 의견도 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총리를 교체할 경우 이를 선거전에 활용하려는 한나라당의 정략에 휘둘릴 수 있다는 반론도 비슷한 맥락이다. 하지만 이미 이 총리가 스스로 사퇴하길 바라는 기류 속에 이 같은 옹호론도 눈에 띄게 잦아들고 있다.
정녹용 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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