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년 2월 21일 낮. 은평소방서 대원들이 관내 이면도로의 소통훈련(소방도로 확보 훈련)을 실시하기위해 현장에 출동했다. 화재발생 등 유사시 소방도로 확보가 목적이지만 평상시 도로에 무단 주차한 차량에 계도장을 붙이고 연락처를 확보해두기 위함도 있었다.
하지만 훈련을 시작도 하기 전에 도로는 입구부터 막혔고, 소방차가 진입하자마자 일대는 주차한 차들과 오르내리는 차들로 엉키고 말았다. 운전자들은 영문도 모르고 서있다가 훈련이라는 말을 듣자 거세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왜 불도 안 났는데 좁은 도로에 소방차가 들어오느냐" "대낮에 훈련은 왜 하느냐", "소방서가 주민생업에 공연한 피해를 준다"….
주민들은 5년 전 온 신문ㆍ방송을 장식했던 참사를 까맣게 잊은 듯 했다. 계도장을 받자마자 땅바닥에 내던지고 가버리는 시민들을 보며 소방관들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 이날 밤, 신발도 벗지 못한 채 은평소방서 휴게실 소파에 몸을 기댄 한 소방관은 "모든 사람들에게 홍제동 화재사건을 기억해 달라는 건 아니지만 먼저 간 동료들의 값진 희생이 잊혀지는 걸 보면 눈물이 난다"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쉽게 잊혀지지만 어느 누군가에게는 잊고 싶어도 영영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있다.
"사람들이 모두 건망증에 걸린 것 같아요. 형이 죽은 지 5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2001년 서울 홍제동 주택화재로 소방관이었던 형(장석찬)을 잃은 장석봉씨 역시 국민들이 그 사건을 너무 빨리 잊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6명의 젊은 소방관의 목숨을 앗아간 홍제동 화재는 소방관의 처우개선과 소방도로의 중요성 등을 일깨우는 중요한 계기가 됐지만 5년이 지난 지금 당시의 사고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 눈이 내리던 2001년 3월4일 새벽 3시 48분. 서울 서부소방서(현 은평소방서) 대원들이 홍제동 화재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했다. 방화로 인한 불이었다. 재빠른 진화작업으로 새벽 4시 11분 불길이 거의 잡혀가는 시점에 누군가가 "집안에 사람이 남아 있다"고 소리쳤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9명의 소방관들은 다시 집안으로 들어갔다.
3~4분 뒤 물을 잔뜩 머금은 주택은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고 건물더미에 매몰되었던 9명의 소방관중 박동규, 김철홍, 박상옥, 김기석, 장석찬, 그리고 박준우 소방관이 숨졌다. 소방관이 된 지 겨우 1년 남짓 된 젊은이가 결혼을 앞두고 산화하였는가 하면, 20년 경력의 베테랑 소방관도 그 중에 있었다.
# 그 때 약혼을 앞두고 순직한 고(故) 박준우 대원의 어머니 김원숙(64)씨는 아들이 죽은 지 3년이 지나는 해에 집 앞마당에 아들을 기리는 기념비를 세웠다. 아들이 기억 속에서 점점 무뎌져 가고 또 세상으로부터 잊혀져 가는 것이 너무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매일 아침 기념비를 닦으며 거룩한 죽음으로 세상을 떠난 아들을 죽는 날까지 가슴에 묻고 갈 것을 다짐한다. 어머니가 어루만지는 아들의 기념비에는 아들이 남기고 간 업적 대신 '소방관의 기도'라는 시가 새겨져 있다.
조영호기자 voldo@hk.co.kr
■ 소방관의 기도
“신이시여!/ 제가 부름을 받을 때에는/ 아무리 강렬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저에게 주소서./ 너무 늦기 전에
어린아이를/ 감싸 안을 수 있게 하시고/ 공포에 떨고 있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 격렬한 화염 속에서도 저의 귀를 지켜주시어/ 가냘픈
외침까지도 들을 수 있게 하시고/ 신속하게 화재를 진압하여/ 어려운
이웃의 재산을 지키게 하소서./ 제가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하시어/ 우리들의 이웃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숙면할 수 있도록
지키게 하여 주소서./ 그리고 신의 뜻에 따라/ 저의 영혼이
육신으로부터 떠나게 되면/ 신의 은총으로 속세에 홀로 남을/ 저의
아내와 가족을 돌보아 주소서.”(이 시는 5년 전 홍제동 화재 당시
순직한 故김철홍 소방관의 책상에서 발견되어 유명해졌다.)
■ 취재후기/ 장난전화·거짓신고…고단한 소방관들
기자는 열흘간 은평소방서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홍제동 참사 5주년(3월4일)을 맞아 소방환경과 시민의식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홍제동 참사의 가장 큰 원인은 좁은 이면도로에 승용차들이 빽빽이 세워져 있어 소방차가 접근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사고이후 여론의 환기가 이뤄져 의무소방대가 창설되고 장비가 교체되는 등 소방환경이 일부 개선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민의식에는 변한 것이 별로 없다는 게 일선 소방관들의 지적입니다.
이번 동행취재기간에 기자는 한 여성 신고자가 자신의 애완견 상태가 평소와 다르다는 이유로 119신고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보았습니다.
어떤 시민은 꾸어준 돈을 받기 위해, 친구가 자살하려 한다고 거짓 신고해 구조대 출동과 위치추적 서비스를 받아내더군요. 이런 허황된 신고는 소방관들에게 또 다른 스트레스를 줍니다. 소방관 중 60대 중반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비율이 일반인의 15배에 달합니다.
조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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