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방학을 이용하여 파리에 다녀왔다. 나는 그곳에서 1990년대의 몇 년 동안 학생신분으로 지낸 적이 있다. 그리고 5년 전에도 한 영화제 참관을 마치고 며칠 들러 묵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별 긴장을 하지 않은 탓인지 공항에서 파리 들어가는 길에 가방을 잃어버렸다.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어두워진 파리 모습에 실망
그 안에는 내가 아끼는 디지털 카메라가 들어 있었다. 서점을 스케치하는 글을 쓰는데, 자료사진을 얻으려고 들고 간 카메라였다. 값도 값이지만 손때 묻은 물건이 사라지니 난감하기도 하고 맥이 풀렸다. 공항으로 돌아가서 분실 신고를 하고는 한참을 카페에 앉아 있어야 했다.
그러면서 찬찬히 보니 5년 만에 찾은 파리는 변해 있었다. 지난해 말 파리 외곽에서 있었던 인종 갈등으로 인한 소요 소식을 들은 탓도 있었겠지만, 예전보다 많이 음울해 보였다. 높은 실업률, 유로화로 화폐통합이 이루어진 뒤의 물가 폭등, 증가하는 인종차별주의, 국제무대에서 축소된 영향력 등등 프랑스를 어둡게 만드는 요소는 적지 않았다.
만나는 사람마다 예전의 파리가 아니라며 주의하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관광객을 노리고 벌떼처럼 몰려든 동유럽 소매치기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대낮에 날치기 강도까지 성행한다는 얘기였다. 아니나다를까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의 표정은 어둡고, 예전과 같은 활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자유ㆍ평등ㆍ박애의 프랑스적 정신을 동경하며 파리 공항에 내렸던 90년대 초반만 해도 프랑스는 이런 나라가 아니었다. 미국의 영향력에 맞서서 적어도 제3세계에서만큼은 발언권이 있었고, 인종차별을 거부하고, 사회통합에 성공한 국가였다. 그런 프랑스가 불과 몇 년 사이에 분열과 갈등, 범죄로 누더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흥 안 나는 여행을 마치고, 이제는 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며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놀라운 사건이 다리고 있었다. 한 젊은 남자가 다가오더니 내 이름을 부르며 잃어버린 가방을 불쑥 내미는 것이었다. 마치 귀신에 홀린 느낌이었다.
●사람에 대한 신뢰가 주는 힘 느껴
비밀은 금방 풀렸다. 그는 공항에서 파리 들어가는 전철에서 우연히 내 가방을 발견했고, 그 안에 들어 있던 내 수첩에서 신원을 확인하고는, 주불 한국대사관에도 문의를 하고, 마지막에는 각 항공사에 확인을 한 끝에 내 예약상황을 알아낸 것이었다. 그리고는 며칠을 기다려 비행기 출발 시간에 맞추어 가방을 들고 공항에 와서 날 기다린 것이다.
갑자기 음울한 파리의 겨울 하늘이 환하게 개는 느낌이었다. 예기치 않은 사건 하나가 도시의 이미지를 바꾼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신뢰할 수 있다는 것, 그 믿음이 바로 프랑스와 파리를 그래도 선진국으로 만든 힘이 아닐까. 내가 만일 그였다면 그렇게 시간과 정성을 들여 가방을 돌려줄 수 있을까. 그런 물음을 던지며 나는 파리를 떠났고, 방학이 되면 또 파리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박철화 문학평론가ㆍ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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