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던 나라, 인도에서 머문 보름은 내 삶의 질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지난 가을, 나는 교통사고로 두 달간 병원을 들락거리며 수면제와 근육이완제와 두통약으로 편치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 알고 지내던 한 기자를 오랜 만에 만났다. 그의 얼굴이 몰라보게 좋아져서 물었더니 요가를 한다고 했다. 우린 자연스럽게 요가며, 명상이며, 인도에 대해 이야기했고 나는 막연히 인도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하건 미리 계획하고 철저히 준비하는 성격의 내가, 크리스마스를 코 앞에 두고 갑작스럽게 인도 여행을 떠난 것은 주변에서 자꾸 인도로 가라는 메시지를 여러 가지로 받고 있었던 덕분이었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도 갑자기 인도에 간다며 인사를 하러 왔었고….
솔직히 두려움이 없지 않았지만 내가 믿는 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홀로 인도로 갔다. 인도 북부, 히말라야 끝자락의 리시케시. 설산에서 수행하는 요기들이 겨울이면 내려와 머무는 성지로 유명한 이 곳의 한 ‘아쉬람’(요가 명상 센터)으로 가 머물렀다. 그곳에서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오직 아침 저녁으로 요가와 명상에 참가했고, 제공되는 세 끼 간단한 식사를 했으며, 외출은 되도록 삼갔다. 자유시간에는 낮이면 갠지스 강이 보이고 히말라야 산이 보이는 잔디에 앉아 있었고, 밤이면 별이 쏟아지는 하늘을 보면서 또 바람소리를 들으면서 하염없이 앉아있었다. 아기처럼 수면제 없이 두통 없이 잘 자고 일어나는 나를 보면서 오길 잘했다는 생각에 기쁘고 감사했다.
한국에 돌아와 처음 일주일은 잘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수면 장애가 왔고 두통도 다시 찾아왔다. 인도에 갔던 것이 물거품이 되는 게 아닌가 싶어 정신을 바짝 차렸다. 아쉬람에서의 생활 처럼 다시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 요가와 명상을 1시간씩 했고, 자기 전에도 그렇게 했다. 거짓말처럼 다시 잘 자기 시작했고 두통도 없어졌다. 새 학기가 돼 오랜 만에 보는 동료 교수들이며 학생들이 너무 밝아졌다고 다들 좋아했다.
우리는 누구나 시련이 없는 삶을 바란다. 하지만 시련은 신이 우리를 직접 돌보고 계신다는 아주 구체적인 표현임을 나는 교통사고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사고의 후유증으로 인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없었다면 모든 것을 중단하고 인도로 갈 생각은 절대 하지 않았을 테고, 명상은 시간 많고 한가한 사람이 하는 다소 진부한 일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를 비우는 명상이 얼마나 은은한 기쁨을 주는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현재의 나에 집중하는 것, 지금 이 순간에 사는 법을 알려주는 명상은 현재가(과거나 미래가 아닌) 곧 신이 내게 주시는 선물임을 알게 해주는 길이며, 이 선물은 지금 깨어있는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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