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는 가라’의 시인 신동엽(1930~1969)의 짧지만 바삐 산 생애의 이야기가 그의 삶의 흔적들과 함께 책으로 묶여 나왔다. 신동엽 문학 연구자인 김응교(와세다대 객원교수)씨가 쓴 ‘시인 신동엽’(현암사)이다.
이번 책은 그간 출간된 신동엽 문학 연구서나 평론집들과 달리 ‘인간 신동엽’에 무게를 실었다. 고인의 유년부터 문학청년 시절, 부인과의 사랑 이야기, 등단과 그의 문학, 사후 기념사업 등 다단한 이야기가 책의 대강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작가의 사진과 어린 시절 성적표, 육필 원고와 관련 기사 스크랩 등이다. 고인의 부인인 인병선(71ㆍ짚풀생활사박물관 관장) 씨가 “숱하게 이사를 다니면서도 오늘까지 간직해온 것들”이다.
두 사람은 인씨가 고교를 졸업하던 53년 겨울에 만났고, 이듬 해 인씨는 서울대 철학과에 진학했다. 결혼(57년)전 시인이 쓴 연서(戀書)들도 사진과 함께 책에 실렸다. ‘내 마음의 고향 추경(秋憬ㆍ인씨의 호)에게’라는 제목을 단 편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리움이 항시 마음속에 소용돌 치는/ 그대를 이름지어/ 내 마음의 고향이라 부르며// 미워하면 미워할사룩/ 잊자 하면 잊자할사룩/ 마음에 속속히 사모쳐오는 그대여// 나의 사람아/ 불타는 가슴…”
갓 대학생이 된 어린 연인의 학교 생활을 질투하고 공부를 방해하며 곁에 주저앉힌 남자가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그리고는 세 아이만 남겨두고 훌쩍 떠나버린 고인이 미울 때도 있지만, 이런 편지를 써 준 사람인데 어찌 미워할 수 있겠느냐고 인씨는 말했다. “지금 읽어도 이렇게 가슴이 울렁거리는데, 그 때야….”
편지를 썼다가 지운 사연을 24살의 시인은 이렇게 적어 보내기도 했다. “막상 봉투에 접어넣고 봉을 할랴치면 쓴 내용이 하나도 마음에 차지않아 도로 꺼내서 한 가닥 찢어버리곤 하게 됩니다. 편지 못쓰는 병에 걸렸나보외다. 이러고 보니 언어 폐지론을 주장하지 않을 수 있겠나뇨. 사랑은 너무 컸어도 언표는 너무 작아서 옆에 있느니만은 못하구려.”
책은 이 나긋나긋한 시인의 언어가 ‘껍데기는 가라’의 단호함과 서사시 ‘금강’의 장엄함으로 나아가는 여정을, 고인의 일대기와 당대의 사회ㆍ정치사와 함께 담담하게 따라간다.
인씨는 시인의 손때 묻은 유품과 연애편지 육필원고 모두를, 연내 착공할 예정인 충남 부여의 신동엽문학관에 기증할 계획이다. “가족이 품고 있던 시인을 이제 세상으로 떠나보내야 할 때인 것 같아요. 그 마지막 작업으로 이 책을 엮게 된 셈입니다.”
인씨에게 고인에 대한 험담 한 마디를 청했다. “어느 날 아침에 방문을 여는데 문짝이 툭 떨어지는 겁니다. 제가 ‘이걸 어째’하며 발을 동동 구르는데 그 사람은 본체만체 집을 나서더군요. 생활인으로서는 늘 빵점이었죠.” 그러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그 사람, 10대 때부터 유언시 비슷한 것들을 썼어요. 생이 길지 않을 것임을 안 듯해요. 그래서 자잘한 일상사는 돌아보지 않고 늘 그렇게 바빴던 것 같아요.”
‘시인 신동엽’ 출판기념회는 7일 저녁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