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란 게 참 묘하다. 누가 지었을지 모르는 땅의 이름이 그 지역의 미래를 예견할 때는 신령함마저 느껴진다. 고흥(高興)이 그런 곳이다. ‘높게 흥할’ 땅은 우주와 닿게 됐고 그 ‘우주’에 힘입어 지역은 흥할 기회를 맞았다.
고흥의 외딴섬 외나로도에는 우리나라 우주기술 개발의 전초기지인 나로도우주센터가 올해 말 완공을 앞두고 공사가 한창이다. 세계에서 13번째로 자체 우주선 발사대가 들어서는 곳. ‘우주의 꿈’에 한껏 달뜬 외나로도에도 새 봄의 햇살이 담뿍 비추고 있었다.
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린 잘 생긴 유자 하나처럼 장흥과 여수 사이에 바다로 뭉툭하니 튀어나온 지형의 고흥반도. 내나로도, 외나로도 두개의 섬이 이 고흥반도 동남쪽에 연이어 붙어있다. 뭍과 다리로 이어졌어도 조용한 섬의 풍취 그대로다. 간혹 우주센터와 연계된 도로공사 현장과 만나지만 않는다면 이곳에 거대한 프로젝트가 실현되고 있다는 걸 느끼기가 힘들다.
섬의 드라이브길,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을 품은 전망은 호쾌했고 섬이 품은 작은 포구들은 시골 어촌의 고즈넉함에 평온해 보였다. 청정의 바다는 쏟아지는 햇살에 눈부시게 반짝이는 데 마치 미리 우주여행을 안내하듯 물빛이 몽환적이다.
외나로도의 한가운데에 높이 410m의 봉래산이 솟아있다. 우주센터의 입구 예당마을에서 비포장길을 따라 10여 분 차로 오르니 봉래산 넓은 자락이 품은 거대한 푸른 숲이 시선을 빼앗는다. 일제 때 시험림으로 조성됐다는 ‘봉래산 삼나무숲’이다. 삼나무와 편백이 함께 자라는 숲의 나이가 80년.
둥치가 한아름 이상씩 자란 3만 여 그루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숲의 모습이 마치 로키산맥이나 알프스에 온 듯 이국적이다. 길쭉한 이등변 삼각형들이 겹쳐서 그려낸 초록의 물결이 멋진 디자인 작품을 보는 듯 매혹적이다.
오솔길을 따라 숲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바늘 같이 가느다란 파란 잎들 사이로 겨울을 보내는 봄볕이 부서져 내린다. 빛의 일렁임에 몸과 마음이 금세 나른해진다. 가는 낙엽들이 쌓인 푹신한 흙길이 아늑하고 거칠 것 없이 하늘로 쭉쭉 뻗은 둥치들 사이로 걷는 걸음이 마냥 흥겹다.
무성한 숲이지만 숲속 산책로를 다 걸어 나오는데 채 10분도 걸리지 않는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환한 숲 밖으로 나서니 시야가 뻥 뚫리면서 억새 너머로 시퍼런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옅은 해무가 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흐리고 있어 하늘과 바다가 한 빛이다. 억새 밭 한가운데 덩그러니 들어선 외딴 집 한 채가 풍경을 더욱 빛내고 있다.
집 뒤로 난 오솔길을 따라 1km 가량 오르면 통신중계소가 나타나고 그 뒷길로 50분 가량 오르면 봉래산 정상이다. 섬을 두른 사면의 바다가 내려다 보이고 고흥 앞바다가 품은 21개의 크고 작은 섬이 발아래서 물결 친다. 날씨가 좋으면 제주의 한라산도 육안으로 들어오는 남해의 전망대다.
고흥=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고흥 외나로도/ 볼거리
‘고흥 통뼈’란 말이 있다. 고흥 사람들은 기골이 장대하다고 해서 붙은 말이다. 힘겹게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던 때에도 고흥 사람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잘 먹고 잘 살았음을 반증하고 있다.
나로도 인근은 예부터 이름난 황금어장이다. 적당한 수심과 빠른 물살로 삼치, 참장어, 참돔 등 이곳에서 잡힌 물고기는 양도 양이지만 그 맛이 좋아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 나로도 고깃배가 집합하는 나로도항은 섬인데도 불구하고 이미 일제 때 전기와 수돗물이 들어갈 정도로 부자 마을이었다.
한 때는 고흥군 세수의 3분의 1을 충당했고 지금도 어선 수백 척이 펼쳐내는 어판장의 풍경이 성대한 곳이다. 일제 때 어업조합이 결성되고, 60년대에는 바다 위에서 어시장이 이뤄지는 파시(波市)가 형성되는 등 국내 어업전진기지로 톡톡한 역할을 해왔던 곳이다.
다리를 건너 외나로도로 들어서서 1km 가량 들어가면 왼쪽으로 나로도 해수욕장이다. 해수욕장 한쪽에 천연기념물 제362호로 지정된 상록수림이 있다. 후박나무, 동백나무 등 70여 종의 나무가 한데 모여 마치 봉긋 솟은 젖무덤의 모양을 하고 있다. 그 옆에는 300그루 되는 해송이 모래 해변과 함께 뻗어 있다.
외나로도 동쪽 끝의 하반 마을이 우주센터가 들어서는 곳이다. 이미 주민 이주가 끝났고 터닦기 공사가 한창이다. 올해 말 완공되면 내년에 ‘과학기술위성 2호’를 시작으로 우주로켓들이 솟구쳐 오르게 된다. 하반 마을은 일출로 유명한 곳이지만 우주센터 공사로 현재는 출입이 힘들다.
외나로도의 일몰은 염포마을이 유명하다. 다도해로 지는 황홀한 일몰이 장관이다. 염포 마을 입구의 염포해수욕장은 까만 자갈로 이뤄진 몽돌해수욕장이다. 자글자글 자갈을 씻어내는 파도 소리가 귀를 간지럽힌다.
나로도항에서는 외나로도를 일주하는 유람선을 탈 수 있다. 외나로도의 기암 절벽과 함께 꼭두여 등 섬을 둘러싼 작은 섬들이 펼치는 다도해국립공원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섬을 일주하는데 2시간 걸리고 요금은 1만4,000원. 금어호 (061)833-6906
이성원기자
■ 여행수첩/ 고흥 외나로도
고흥은 멀다. 해남을 땅끝이라 하지만 서울에서 가자면 고흥이 더 오래 걸린다. 남해고속도로 주암IC나 서순천 IC에서 나와 벌교까지 가서는 15번 국도를 타고 계속 남으로 내려오면 외나로도다.
서울에서 줄잡아 5~6시간 걸린다. 외나로도 안에서 하나였던 길은 봉래초등학교남분교 앞에서 동쪽으로 예당, 하반으로 가는 길과 서쪽 염포로 가는 길로 갈라진다.
나로도항의 남도회관(061-832-4505)은 한정식으로, 서울식당(061-835-5111)은 제철 싱싱한 회로 유명하다. 고흥군청 문화관광과 (061)830-5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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