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최재용(34)씨는 요즘 억울해서 잠이 잘 안 온다.
두 달여간 발품을 팔아 전세집을 구했고, 드디어 5일 전세 8,000만원 하는 아파트로 이사를 가기로 했다. 계약서까지 쓴 건 좋았는데,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중개 수수료 40만원을 카드로는 받지 않는다고 했다.
소득공제용 현금영수증을 발급해 달래도 고개를 가로 저었다. 중개업소 주인은 “카드 가맹점에는 가입을 안 했다”고 했고, “중개 수수료에 대해 영수증을 써 달라고 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며 오히려 역성을 냈다.
이사 업체도 속을 썩이기는 매한가지였다. 전국 체인망을 갖춘 포장이사업체에 맡겼지만 업체 측은 이사 비용 100만원을 카드로 결제하거나 소득공제용 현금영수증을 발급 받으려면 10%의 추가 비용을 더 내야 한다고 했다.
연 소득이 2,500만원이 안되면 이사 비용에 대해 100만원의 소득공제를 받지만 최씨의 소득은 그 이상이어서 자동 공제 대상이 될 수 없다.
최씨는 “동네 편의점에서 몇 천원 짜리 물건을 사도 카드결제가 되는데 이건 말이 안 된다”며 “올해는 목돈이 들 것 같아 내심 연말 소득공제를 기대했는데 아무런 혜택을 볼 수 없게 됐다”고 푸념했다.
부동산 중개업소, 운송업체 등 이사 관련 업체들이 신용카드 결제나 현금 영수증 발급을 꺼려 소비자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새 봄을 맞아 이사를 했거나 준비를 하고 있는 서민들은 조금이라도 세금을 줄이려 애써보지만 이들 업체들의 막무가내식 횡포에 가슴만 두드리고 있다.
카드 결제를 거부하는 사각지대는 이들 업체 말고도 많다. 새 학기를 맞아 사람들로 붐비는 대형전자상가나 미용 치료를 위해 찾는 병원 등에서 카드 결제를 하려면 수만원에서 수십만원의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여신금융협회가 공시한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율은 보통 3~5%에 불과하지만 강제규정은 아니다. 따라서 가맹점이 관행처럼 10%의 수수료를 요구할 경우 소비자는 현금으로 결제하기 마련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12월 1달 동안 카드결제 거부 등 고객을 부당하게 대우한 가맹점 44곳을 적발했다. 그러나 이는 신고에 따른 조사 결과인 만큼 실제 소비자가 불이익을 받는 경우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업소가 신용카드 가맹점에 가입돼 있지 않은 경우에는 강제할 방법이 아예 없다는 것이다. 현행법은 가맹점의 부당한 행위에 대해서만 처벌 규정을 명시하고 있을 뿐이다.
이에 대해 서울YMCA 관계자는 “업체가 정한 결제 방식을 소비자가 울며 겨자먹기로 따를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개선하는 것이 투명한 세원 확보를 위한 첫걸음”이라고 지적했다. 3월3일, 오늘은 납세자의 날이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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