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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음식 - 박재은의 음식 이야기 - 밥이랑 국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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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음식 - 박재은의 음식 이야기 - 밥이랑 국이랑

입력
2006.03.03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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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칼럼을 쓰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어느 밥집이 맛있는지, 평소에는 뭘 즐겨 먹는지와 같은 것들이다. 나를 식사에 초대하는 이들은 장소 선정에 애를 먹는다 하고, 잡지사에서는 내게 ‘맛 집’ 선정을 청하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메뉴? 바로 ‘가정식’이다. 밥 한 공기와 곁들여 나오는 따끈한 국물 약간에 반찬 몇 가지가 전부인 ‘가정식 백반’ 말이다. 여기에 생선을 굽거나 찌개를 하나 추가하면 더 바랄 것이 없어지는 맛. “댁에서는 어떤 요리를 드시나요?”묻는 이들에게도 나의 답은 똑같다. “가정식 먹어요.”

1. 밥

가정식이 언제부턴가 ‘싼 밥’으로 치부되었는지 모르겠으나 제대로 된 가정식을 차려내려면 프랑스 요리사 못지않은 정성이 필요하다. 집집마다 조금씩 다른 가정식의 구성을 살펴보면 몇 가지 공통된 요소들을 발견할 수가 있는데, 그 중 으뜸은 ‘밥 맛’이다.

무슨 얘기인가 하면 가정식은 밥을 중심으로 차려지게 되니까, 그 중심에 있는 밥이 맛을 잡아주지 못하면 둘러진 찬이나 기타 등등이 한 번에 맛을 잃게 되더라는 거다. 반면 밥이 맛있는 집은 이미 자신감이 넘쳐있다. 정성껏 지은 밥이 정말 맛있으면 맨 김에 싸서 간장만 찍어도 멋진 맛이 나는 것을 안다는 거다.

밥은 대게 쌀밥을 골자로 하되 조나 국산 콩, 흑미를 약간 섞기도 한다. 관건은 무엇을 ‘섞었느냐’가 아니라 물의 양이나 쌀의 불린 정도 등에 의해 완성되는 찰기와 냄새, 종합적인 식감에 있다.

2. 국물

국도 있고, 찌개도 있으면 좋겠지만 둘 중 하나만 있어도 된다. 이 때 국은 주로 맑게 끓인 콩나물국이나 미역국, 된장국 등이 준비되는데, 어떤 반찬과 함께 먹어도 무난해서다. 찌개를 곁들인다면 된장 혹은 김치찌개이다.

여기서부터 밥 집 주방의 색깔이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청국장도 떠 넣은 진한 된장찌개인지, 젓갈을 거의 넣지 않은 김치로 끓여 칼칼한 김치찌개인지 구분이 되는 것이다. 내 엄마의 가정식 김치찌개는 순한 서울식 김치와 찌개용을 따로 담그시는 호박김치를 섞어 끓여서 단 맛이 있고 매끈하다.

내 가정식 김치찌개는 엄마의 김치에 돼지고기랑 고춧가루, 청양고추를 더 넣기 때문에 기름지고 매워진다. 철이 맞으면 생태찌개나 동태찌개가 메뉴에 오르기도 하는데, 그러다 보면 상이 꽤나 얼큰해져서 술 한 잔 곁들이게 되니 식사 시간이 길어지는 단점이 있다.

3. 구이

‘구이’요리라 하면 기름을 덜 쓰고 식재료 본연의 지방질과 불의 힘으로만 완성된 맛을 떠올리게 되는데, 가정식 밥상에 주로 오르는 구이는 생선이다. 특히 고등어, 삼치, 꽁치 등 값이 합리적이고 영양은 많은 등 푸른 생선류가 인기.

생선의 질은 기본, 소금 간과 화력이 생명인데, 생선 구이 맛있는 집에서 밥을 먹으면 다른 찬에는 손도 못 대고 일어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고기 ‘육(肉)’자가 부럽지 않은 살점과 기름기, 넘치는 살 냄새가 입 안에 가득하여 5,000원 권 한 장 내밀기가 미안한 기분이 들 정도니까. 생선 기름기를 가셔줄 수 있는 풋고추가 상에 올라 있다면 아작거리면서 한 입씩 번갈아 먹어본다.

4. 지짐, 볶음

‘구이’가 부실할 때 차선책으로 떠오르는 요리법으로 지지거나 볶는 방법이 있다. 지짐은 대게 ‘달걀 물’을 입혀서 식용유를 두른 번철에 익혀 내는데, 쉽게는 달걀 프라이나 두부 지짐을 만들 수 있다. 남은 부추나 파 끝을 넣고 부쳐 내기도 하고, 된장국 끓이고 남은 봄 동을 부침 반죽에 담갔다 지져 먹기도 한다.

볶음은 잘게 채 썬 감자와 햄이나 소시지를 볶기도 하고 길이로 썬 버섯과 당근을 볶기도 하는데, 기름과 만나서 베타카로틴의 흡수율이 높아지는 식재료를 주로 사용하며 소금 간 정도만 살짝 하고, 때로 케첩을 곁들여 내기도 한다. 지짐이나 볶음은 생략 가능하지만 하나쯤 있으면, 젓가락이 자주 가게 된다.

5. 밑반찬&김치

밑반찬과 김치가 맛있으면 앞에 열거 된 국물이나 구이, 지짐이 없어도 맛만 있다는 이들이 많기 때문에 가정식의 ‘필살기’ 정도로 여겨야 할 부분이다. 밑반찬은 멸치나 오징어를 양념해서 만들거나 숙채나 생채를 낼 수 있다.

메추리알이나 꽈리 고추 혹은 토란 등을 장조림하면 밥에 비벼먹기 좋고, 뱅어포나 북어와 같이 마른 건어물을 한 번에 밑반찬으로 만들면 두고 먹기 좋다. 한국사람 식단에서 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모두들 잘 알기에 설명을 생략한다.

옆 나라 일본에서는 ‘가정식’을 하나의 요리 장르로 구분한다. 가정식은 ‘싼 밥’과 뜻을 같이 하는 것이 아닌 매일 매일 먹을 수 있게 만든 합리적인 요리 스타일인 것이다. ‘폼 나는 주부’가 되기 위해 매일 요가를 하고 서양식 요리 수업을 듣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제집만의 가정식’을 만들 줄 모른다면 유감스러운 일이라는 말이다.

가정식이 맛있으면 온 식구가 가정식을 먹으러 집으로 모일 수밖에 없다. 입에 익은 맛있는 기억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오늘도 둘만 사는 우리 집의 식탁에는 건 표고를 넣어 지은 밥과 맑은 된장국, 상큼하게 무친 톳과 겉절이, 완자 지짐과 들기름에 구운 완도 김이 차려진다. 보기만 해도 힘이 나는 ‘내 가정식’이다.

푸드채널 ‘레드 쿡 다이어리’ 진행자 박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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