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외교에 굵직한 사안들이 여럿 터져 나왔다. 대표적인 것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합의, 대통령이 연초에 갑자기 끄집어 낸 한미 FTA, 그 직후 스크린쿼터 축소, 그리고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의 유엔사무총장 직 출마 선언 등이다.
이들 사안은 물론 미국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말로만 자주, 對美 협상력은 약화
한미동맹의 미래와 한미 FTA의 추진 때문에 불거져 나온 사안들이고 유엔사무총장 선출도 미국의 지지를 받아야만 하는 사안이다.
그런데 이와 관련한 현 참여정부의 외교는 매우 불안하기만 하다. 왜냐하면 현 외교안보팀은 심사숙고하여 만들어진 한국의 미래에 대한 큰 그림과 전략 없이 그저 대통령이 과제를 툭툭 던지면 이를 어떻게 해서든지 만들어 내고자 하는 투지만이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간략히 지난 3년을 한번 돌아보자. 우선 참여정부는 한미관계에 있어서 매우 자주적이고, 강한 수사를 사용하여 왔다. 미국에 대하여 할 말은 하겠다는 자세를 견지하였고, 대통령도 당당하게 미국을 비판하는 발언을 하곤 하였다. 그리고 민주주의 원칙 하에 반미운동이나 감정 표출에 대하여 상당히 유연하게 대처하였다.
대개의 경우 이러한 당당함과 다양한 국론의 인정은 그 국가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하여 사용된다. 즉 협상에서 양보를 하기 힘든 상황을 미리 조성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은 이러한 상황이 생겨나자 이를 역이용하는 고차원의 전술을 보여주었다. “한미관계가 최악이다” “한미동맹, 결별할 때가 되었다” “미국과 중국 중 한쪽을 선택하라” 등의 더욱 강한 수사를 사용하며 한국 내의 여론을 미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바꾸어나간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전략은 사실 협상이라는 시각에서만 보면 자연스러운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미국의 전략에 현 정부가 초기에 왜 그렇게 자주적이었는지 이해가 안 갈 정도로 너무나도 쉽게 말리기 시작한 것이다.
즉 현 정부가 반미정부가 아니고, 한미동맹을 버릴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대미외교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물론 북핵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미국의 지원이 절실했겠지만 그렇게 한미관계가 가깝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참여정부가 노력하였어도 미국은 북핵 문제 해결에 한국을 크게 두둔하지도 않았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대통령이 한미관계의 공고함을 증명할 수 있는 최대의 카드인 한미 FTA를 공론화 과정 없이 던져버리면 이 사안에서 한국의 입지는 매우 좁아지게 된다.
우선 대통령이 시한을 정해놓고 FTA 성사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임으로써 주무부서인 외교부는 스스로 협상의 하한선을 처음부터 낮추지 않을 수 없다.
또한 협상카드로 사용할 수 있는 스크린쿼터 문제를 먼저 양보하고 들어가 사실상 FTA 협상이 결렬되어도 미국에 스크린쿼터 축소라는 선물을 안겨주는, 이해하기 힘든 협상전략을 택하고 말았다.
●FTA 등 추진 방식 이해안가
이와 관련하여 반기문 외교부장관의 유엔사무총장 출마 건도 매우 이해하기 힘들다. 외교부와 외교부장관은 강대국, 특히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들과 국익을 위하여 협상을 하는 부서와 직책이다.
그런데 유엔사무총장은 이들 강대국의 지지가 없으면 선출되기 어렵다. 이 상황에서 외교부가 외교부장관의 유엔사무총장 선출에 총력을 기울이게 된다면 FTA와 관련한 대미 협상력을 처음부터 떨어뜨리게 되고, 일본에 대해서도 유엔 안보리 개편에 관하여 당당한 주장을 못하게 된다.
더구나 북핵 문제를 협상하는 6자회담의 한국측 대표가 UN사무총장 선출을 위한 국내팀장이니 다른 6자회담국이 이를 이용하려고 든다면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참여정부가 출범 때 보여준 자주와 당당함은 도대체 왜 필요했던 것인가? 지금 참여정부의 외교는 도대체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가?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p>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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