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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지끈' 과학용어 쉽게 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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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지끈' 과학용어 쉽게 써요"

입력
2006.03.02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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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서시스(metathesis)가 뭔가요?”(기자) “이중 결합을 가진 두 화합물이 반응해서 각각 갖고 있던 성분을 맞바꾸는 반응입니다.”(교수) “그런데 메타서시스를 우리말로 뭐라고 하나요?”(기자) “아 그게…. 글쎄요, 우리말로 뭐더라….”(교수) “사전에는 복분해(複分解)라고 나오네요. 복분해도 너무 어려운데, 좀 쉬운 말은 없나요? 이중분해라고 말하면 안되나요?”(기자)

과학 분야를 취재하면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과학에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첫번째 걸림돌은 바로 용어다. 특히 어원조차 가늠하기 힘든 일본식 한자어와 외래어는 과학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채 외우게끔 만드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다.

“perturbation이라는 단어는 살짝 건드려서 작은 변화를 일으킨다는 말입니다. 이걸 섭동(攝動)이라고 번역하면 무슨 말인지 알아듣습니까?” 한국물리학회의 용어심의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준규 서울대 교수는 “쉬운 우리말 용어를 정비하는 것은 학문을 하고 교육을 하는 기본”이라고 강조한다. 예컨대 1932년 조선어학회가 정리한 과학용어에서 만유인력을 ‘다잇글힘’(다이끌힘), 원심력을 ‘속찾힘’ 등으로 표현한 것을 보면 섭동이라는 한자어로 배우는 것보다는 훨씬 과학이 쉬웠을 것이다.

서강대 화학과 이덕환 교수는 “대중이나 학생과 의사소통 뿐 아니라 분야가 다른 학자들 사이에서도 우리 용어를 갖지 않는다면 큰 장애가 된다”고 덧붙인다.

사실상 과학용어 정비 작업은 끊임없이 진행중이다. 지난달 24일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핵심과학기술용어집을 펴냈고, 지난해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과학기술대사전을 발행했으며, 현재 한국학술단체연합회가 학술 전문용어 정비 및 표준화 사업을 하고 있다. 각 학회별로도 90년대 이후 순우리말 용어를 정비하는 작업을 벌여왔다. 하지만 아직도 일본식 한자어가 남아있거나, 또는 잘 안 쓰는 순우리말로 바꾸었다가 한자어로 되돌아오는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우리말 용어작업에 가장 심혈을 기울인 학회는 한국물리학회다. 학회는 1990년부터 북한용어, 다른 학회의 용어, 아이디어 수렴 등을 거쳐 1995년 순우리말이 크게 강화된 물리학용어집을 내놓았다. 장(field)은 마당, 력(force)은 힘, 진동은 떨기, 마찰은 쓸림 등으로 바꿀 정도로 순우리말을 많이 차용했다. 이중 들뜬 상태(excited state), 되먹임(feedback), 결맞음(coherence)과 같은 용어는 쉬우면서도 뜻을 잘 전달해 잘 자리잡은 용어들이다.

하지만 우리말이라고 해서 늘 쉬운 것은 아니다. 물리학회는 지난해 조정된 물리용어를 내놓으면서 ‘바깥되비침’이나 ‘쬔량재개’와 같은 말을 ‘외부반사’, ‘노출계’로 돌이켰다. 화학술어에는 Annealing(금속 등을 달구었다가 식힘)을 ‘스루기’라는 고어로 번역했지만 아무도 쓰지 않는다. 물리학회가 순우리말 용어를 시도했다가 다시 한자어로 되돌린 데에는 학생들에게 실제 시험해 본 결과 기존의 한자용어보다 더 이해를 못하는 결과를 빚었기 때문이다. 학회가 만든 말이라고 해서 그 말이 언제나 일방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최근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석사과정의 1호 논문으로 ‘커뮤니케이션 활성화를 위한 과학용어 정착 과정 연구’를 쓴 한국과학문화재단 김정식 과장은 “언론보도에서 Stem cell이 90년대 후반 간(幹)세포로 쓰이다가 최근 줄기세포라는 말로 정착한 것은 대중이 쓰고 싶은 용어를 주도적으로 선택하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말했다.

결국 쉬운 과학용어를 만드는 데에는 각 학회뿐 아니라 우리말 전문가가 동참해야 하며,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하다. 이덕환 교수는 “각 학회별로 이뤄지고 있는 용어 정비에 국어연구원의 공동 연구가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현행 과학교과서에도 80년대 용어를 쓰고 있을 정도다. 과학기술부 역시 국어연구원에 대한 연구비 지원은 미처 생각하지 않고 있다. 과학기술중심사회를 추구하고 있는 정부가 우리말 과학용어 개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는 것은 오히려 의아한 일이다.

■ 여기서 찾아보세요

▦물리학용어집 = 한국물리학회 홈페이지(www.kps.or.kr) 내 자료실. 9,000여개 한·영 물리학 용어를 엑셀 파일로 다운받을 수 있음. 2005년 수정.

▦화학술어 = 대한화학회 홈페이지(www.kcsnet.or.kr) 내 화학정보. 약 7,300개 한·영 용어를 살펴볼 수 있음. 1998년 수정된 화합물 명명법 기본원칙에 따른 원소, 화합물 이름이 수록.

▦수학용어 = 대한수학회 홈페이지(www.kms.or.kr) 내 자료실. 5,300개 한·영 용어 검색 가능.

▦과학기술용어집 =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엮음. 학회별 용어집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1976년 발행한 과학기술용어집을 중심으로 22만개 과학 용어 수록. 1998년 발간.

▦핵심과학기술용어집 =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엮음. 4개 이상 분야에서 공통적으로 쓰이는 2만여 개 한·영 용어 수록. 2006년 발간.

▦과학기술대사전 =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편, 아카데미서적 발행. 28개 과학분야, 20만개 용어사전. 단순한 한·영 용어 번역이 아닌 해설이 곁들여진 사전. 영한편, 한영편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한자 병용, 분야별 용어 쓰임의 차이를 구분. 2005년 발간. 38만5,000원.

김희원 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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