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나온 작품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일본 영화 ‘피와 뼈’이다. 괴물 같은 사내 김준평이 가족을 혹사하고 주변사람의 피와 땀을 착취하는 과정을 몸서리치게 상세히 그려낸 작품이다.
한 인간의 광기어린 패악을 묵묵히 바라보며 날 것으로 느껴보라는 영화의 냉랭한 시선이 한 없이 불편했다. 더욱이 악마성으로 똘똘 뭉친 김준평의 불우한 생애에는 한줌의 동정조차 보낼 수 없었다.
그러나 한 케이블TV를 통해 영화를 다시 봤을 때 김준평의 삶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가 굴곡진 삶을 거쳐 북송선을 탔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모습이 지난 시절 재일동포의 가슴 아픈 자화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현재 상영중인 ‘박치기!’도 재일동포, 정확히 말하면 조총련계 동포(영화에서는 조선인으로 표현한다)의 1960년대 스산한 삶을 묘사하고 있다.
조선인 고등학생들이 일본학생과 벌이는 우스꽝스러운 좌충우돌은 통쾌하기보다는 씁쓸하고, 웃음보다는 눈물을 자아낸다. ‘박치기!’의 주인공도 북송선을 타고 출구 없는 일본 땅을 떠나고 싶어한다.
그러나 조국 북한이 미래를 보장하는 ‘약속의 땅’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다.
또 한차례 3ㆍ1절이 지나갔다.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고 민족정신을 되새겨보는 날이지만, 민족이라는 구호성 짙은 단어에 쉽게 가슴이 뭉클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피와 뼈’와 ‘박치기!’를 떠올리며 재일동포에 대한 감당하기 힘든 부채의식을 느꼈다. 과거 남북이 민족이라는 동질성에 앞서 재일동포 편가르기에 몰두하면서도 그들의 비참한 삶과 인권을 외면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현실을 살펴보면 재일동포에 대한 죄의식은 탈북자와 재중동포에게로 이어진다. ‘잘사는 같은 민족의 나라에 가면 좀 더 안락한 삶을 살 수 있겠지’라는 믿음 하나만 가지고 이 땅을 찾은 그들을 우리는 냉대로 일관하고 있다.
밀린 월급을 못 받고 거리를 헤매다 동사(凍死)한 재중동포의 실제 이야기를 담은 옴니버스 영화 ‘다섯 개의 시선’의 ‘종로, 겨울’은 우리의 민족의식이 얼마나 겉치레에 불과한 것인지 잘 보여준다.
월드컵을 앞두고 또다시 민족의 자긍심을 외치는 요즘, 결국 말보다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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