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두 정류장 거리에 남산 시립도서관이 있다. 중학교 1학년이었을 때 처음 그 도서관에 갔었다. 일요일이면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서도 도서관 앞에 지어진 길고 긴 줄이 나를 맞이하곤 했다. 회현아파트 위에 있는 파출소까지 줄이 늘어진 날도 있었다. 그래서 도서관 문을 여는 시간이 되기 전에 미리 진을 치고 있
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 시절 청소년들은 자기 집에서 공부방은커녕 변변한 책상도 차지하기 쉽지 않았다. 그래도 불평할 수 없었다. 학업을 계속할 형편이 못 되는 친구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단번에 열람실 번호표를 받을 때보다 대기표를 받고서 누군가 나오기를 기다려야 할 때가 더 많았다. 이렇게 기를 쓰고 도서관에 들어가는 학생들이 모두 공부할 장소에 목말라 한 건 아니었다.
도서관은 긴 시간 집을 나와 떳떳이 빈둥거릴 수 있는, 열등생들의 해방구이기도 했다. 책상 위에 한가득 책가방을 풀어놓는 것으로 영역표시를 마치고 어슬렁어슬렁 내려갔던 지하식당. 식당 안에는 졸은 우동국물냄새와 단무지냄새가 둥둥 떠다녔다. 하나같이 찌그러졌던 양은냄비들. 그 어두운 지하에서도 우리는 패잔병처럼 산만했다.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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