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메아리] 우리 사회의 품위를 위해

입력
2006.03.01 00:06
0 0

치매는 암이나 중풍보다 더 두려운 질병이다. 지난해 한나라당 안명옥 의원이 남녀노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35.4%가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으로 치매를 꼽았다. 노인들에게 발병률이 높고 더 치명적인 뇌졸중(26.5%)이나 암(24.9%)보다 치매가 훨씬 더 두렵다는 것이다.

노인들은 치매가 두려운 이유로 가족에게 피해를 주거나 버림받을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치매란 사회차원의 진지한 문제

치매는 한 인간의 인격과 정체성을 파괴하고 앗아가 버린다는 점에서 고통도 고통이지만 슬프고 비극적인 질환이다. 어린애처럼 곁에서 누군가 항상 돌봐줘야 하기 때문에 치매환자의 가족들도 엄청난 부담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고 가족 붕괴로 이어지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병하는 치매 중 일부는 치료가 가능하나 보통 노망이라고 부르는 노인성 치매는 일시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지만 근본적인 치료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 중 치매환자는 10~13%나 된다. 고령으로 갈수록 발병률이 높아져 80세 이상 노인의 경우 여자는 5명중 2명, 남자는 5명 중 1명 꼴로 치매환자라고 한다.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만큼 치매환자는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고 치매는 우리 모두의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인간의 존엄과 품위 있는 삶의 마무리가 걸려 있는 치매에 대해 보다 진지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경원시 하거나 창피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치매라고 하면 욕이 되는 그런 풍토에서는 치매를 우리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치매환자 개인과 가족 차원을 넘어 사회와 국가가 치매 대책 마련에 나서는 분위기 형성도 난망해진다.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의 ‘DJ(김대중 전 대통령) 치매 발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공방은 그래서 매우 부적절하다. 이 공방에서 치매는 창피하고 경원시 해야 할 무엇이 되어버리는데 이는 치매로 고통 받고 있는 수많은 환자와 그 가족들을 욕되게 하는 행위다.

전 의원은 “DJ가 2000년 방북 때 김정일이 공항에서 껴안아 주니까 치매든 노인처럼 얼어 있다 합의한 것이 6ㆍ15 공동선언”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자신의 신념과 인식에 따라 6ㆍ15공동선언 내용을 비판할 수 있지만 굳이 ‘치매든 노인’이란 표현을 끌어들인 전 의원의 양식이 의심스럽다. 비틀고 찌르는 전 의원의 독설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고슴도치의 바늘처럼 닿는 대상에게 아픈 상처를 내는 말 습관이다. 그러나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독한 습관이 알고 보면 자기 내면의 상처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어려서 받았던 마음의 상처와 분노, 성장과정에서의 심한 결핍 등이 독으로 품어져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이다. 전 의원의 독설이 그러한 내면의 상처나 결핍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전 의원도 피해자다. 전 의원은 자신의 내면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를 진지하게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내면 상처 가진 사람 보듬어줘야

우리 주변과 사회에서 목격하는 문제 행동들도 알고 보면 다 내면의 상처나 혹은 정신적 장애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사소한 일에 벌컥벌컥 화를 내서 주위 사람들에게 상습적으로 상처를 안겨주는 사람, 조직을 갈갈이 갈라놓는 분열기제 장애를 가진 사람, 과격한 용어와 비약된 논리로 국민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정치인과 권력층 인사 등등. 여기자 성 추행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최연희 의원도 문제행동을 유발한 내면의 상처나 정신적 장애가 있는지 모른다.

내면 깊숙이 자리한 상처나 분노에서 비롯되는 정신적 장애는 치유가 쉽지 않다고 한다. 문제행동을 비난하면 상태가 더욱 악화하는 경우도 흔하다. 그래서 스스로 내면의 상처와 분노의 뿌리를 찾아서 치유하겠다는 자발적 의지가 생기도록 주변에서 보살핌과 격려가 필요하다. 당사자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품위를 위해서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