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강준만 칼럼] 권력 지상주의 문화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강준만 칼럼] 권력 지상주의 문화

입력
2006.03.01 00:00
0 0

“미국에는 정신과 의사가 있지만 중국에는 정신과 의사가 있을 수 없다. 정신과 의사를 만나면 사실대로 말해야 하는데 중국인은 누구를 만나도 사실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필화로 9년간 감옥살이를 하기도 했던 대만의 언론인 보양이 ‘추악한 중국인’이라는 책에서 한 말이다. 풍자나 유머로 이해하면 되겠다. 사실을 말하지 않고 유ㆍ불리를 따지는 눈치가 성행하는 문화에 관한 한 한국도 만만치 않다. 한국인은 일상적 대인관계에선 때로 지나치게 솔직한 점이 오히려 문제이지만, ‘권력’ 문제가 개입되면 눈치의 전문가가 된다.

●'만년 여당'으로 보신하는 세태

‘만년 여당’이라는 말이 있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여당만 지지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지방에서 주로 돈과 힘 깨나 있는 사람들이 그런다.

정부여당은 줄 게 많을뿐만 아니라 막강한 보복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그만큼 정부를 존중하는 애국심이 강해서 그렇다고 보아야 할까? 이들이 ‘만년 여당’을 하면서 계속 지배 엘리트 노릇을 하는 바람에 생기는 부작용이 너무 커 아무래도 그렇게 보긴 어려울 것 같다.

도무지 물갈이가 되질 않기 때문에 변화의 기운이 없고 모든 게 침체돼 있다. 과거 입만 열면 운동권 욕을 하던 사람들이 열렬한 여당 지지자로 변신해 말로만 개혁을 외쳐대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하는 것도 곤혹스럽다. 그나마 지방자치 덕분에 일부 지역에선 두 개의 여당이 존재하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보수 시민운동가로 유명한 이석연 변호사가 최근 털어놓은 경험담도 듣기에 씁쓸하다. 기업들이 후환이 두려워 보수 시민단체엔 기부를 하지 않는 반면 “진보, 좌파 성향의 인사가 주도하는 시민단체나 조직에는 많은 기업의 보험용 기부가 문전성시”라고 한다. 좀 과장된 주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시민단체 기부금마저 권력 바람을 탄다는 건 부인하기 어렵다.

지방 토호와 기업들의 ‘눈치 보기’보다는 덜하겠지만, 대학교수들도 자유롭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자신이 몸 담고 있는 대학에서의 안녕을 위해서도 눈치를 보아야 할 게 있겠지만, 사회참여 행위도 그런 바람을 많이 탄다. 시위대에 묻혀 팔을 휘두르는 참여에 만족하지 못하고 ‘큰 일’을 해보고자 한다면 말이다.

우리는 정치인들의 ‘승리 지상주의’, ‘승자 독식주의’를 비판하지만, 그들 역시 지금과 같은 ‘권력 지상주의 문화’의 포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당이나 친여세력이 아니라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돈과 사람이 다 떨어져 나가는 풍토에서 “왜 그렇게 승리에 집착하고 모든 걸 독식하느냐?”고 따져묻는 건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남들이 보는 곳에선 여당을 지지하고 익명이 보장되면 여당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 혹 이들이 정부여당의 냉정한 현실 인식에 혼선을 초래하는 요인은 아닐까? ‘권력 지상주의 문화’를 그대로 두거나 오히려 강화하면서 추구하는 ‘개혁’이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승자의 훈장일까? 아니면 승자가 되기 위한 도구인가? 권력을 갖지 않으면 원하는 일을 전혀 할 수 없고 압도적 다수가 되지 않으면 그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없기에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강박엔 정녕 문제가 없는 것인가?

●권력 눈치보는 문화 안달라져

권력은 제도와 더불어 사람들의 인식에서 비롯된다.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권력 주체에 의한 권력의 성격 변화 시도는 별 의미를 갖지 못한다. 사람들의 권력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건 권력 행사의 목적이 아니라 방법이다.

아무리 좋은 목적일망정 권력의 이용방법이 구태의연하다면, 달라질 건 없다. 지금 우리는 이런 상황에 처해 있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던 사람들은 권력의 퇴장 무렵부터 새로운 권력을 찾아 또다른 말을 하게 될 것이다.

전북대 신방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