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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나쁜 취향-문화, 낯설게 보기] (54·끝) 핑크 플로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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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나쁜 취향-문화, 낯설게 보기] (54·끝) 핑크 플로이드

입력
2006.02.28 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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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취향’을 1년여 동안 연재하면서 ‘별로 취향이 나쁘지 않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다. ‘나쁘다’라는 말에서 모종의 극렬한 반골의식이나 혁신적인 도발성 등을 기대했던 듯한데, 연재를 마치면서 고백하건대 그런 의견들에 일정 부분 동의한다. 그러나 최초의 연재 의도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내가 말한 ‘나쁜 취향’이란 어떤 극악함이나 비주류적인 것만을 뜻하는 게 아니었다. 때로 엽기적이거나 비정상적인 경향으로 표면화하는 것들에 경도될 수는 있지만, 그런 것들은 나를 유혹하는 일차적인 유혹거리에 불과하다. 비주류적인 것들에 잘 끌리긴 하되, 내 문화적 감식안과 식견이 순전히 음지에만 머물러 있는 건 아닌 것이다.

‘나쁘다’는 말은 ‘좋다’ 또는 ‘올바르다’의 반대말이 아니라, ‘제멋대로’ 내지는 ‘독단적인’ 등으로 해석되는 게 더 어울린다. 이를테면 ‘나쁜 취향’을 관통하고 있는 정서적이거나 논리적인 기준이 사회통념이나 문화계 일반의 시각과는 사뭇 다른, 순전히 내 멋대로의 미감과 취향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나는 어떤 예술가에게 부여되어있는 고정된 이미지나 일반적 정보 등에 많이 무지할 뿐 아니라 무관심하다.

나는 오로지 나만의 일방적인 시각과 느낌에 근거해서 재생성되는 특별한 캐릭터를 그리고자 했을 뿐이다. 그게 설령 걸러지지 않은 편견과 주관적 감정이입으로 인한 억지에 불과할지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을 더듬더듬 반복하느니 세상의 외곽에서 말도 안 되는 생떼를 쓰는 게 내겐 더 솔직하고 절박한 일이었다. 이런 억지와 생떼를 1년 동안이나 소리 없이 성원하며 귀 기울여준 독자들께 감사드린다.

끝나는 마당에 뒷북치듯 애초의 의도를 재점검하는 건 일종의 의례적인 회오(悔悟)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연재 기간 동안 방만해진 생각과 갈피를 잃어버린 말들 탓에 때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자중지란의 미로를 자진 폐쇄하겠다는 뜻도 있다.

50여 회 동안 언급된 그 숱한 뮤지션들, 영화들, 시인들의 작품들이 이 순간 너무도 복잡하게 뒤엉켜 진동하고 있는데, 마지막 회를 준비하면서 그 모든 울림과 색감과 움직임들을 한 꼭지로 묶어줄 만한 아티스트를 곰곰 생각하게 되었다.

꼭 다루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던 스페인 시인 가르시아 로르카가 우선 떠올랐지만, 어떤 당대적 혼란과 복잡다단한 미의식들을 포괄적으로 설명하기엔 그가 가진 귀족적 품성과 우아한 미의식이 마지막 회의 주인공으로는 어울리지 않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책장과 CD꽂이를 번갈아 기웃거렸다.

몇 번의 망설임과 재고 끝에 선택된 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다소 생뚱맞게도 영국의 록그룹 핑크 플로이드다. 왜 생뚱맞은지는 아마도 이 글의 결론에서 저절로 드러날 것이다.

나름대로 오랫동안 많은 음악들을 들어오면서 취향도 들쭉날쭉이었지만, 핑크 플로이드는 그 음악적 역량이나 위상에 비해 그다지 호감이 가지 않는 밴드였다.

핑크 플로이드를 일약 세계적인 밴드로 급부상케 했던 명반 ‘The Dark side of the moon’(1973)이나 ‘The Wall’(1979) 등을 한때 귀에 인이 박히도록 들었을 뿐 아니라 로저 워터스의 솔로앨범에도 열광했던 기억이 있지만, 나의 베스트 뮤지션 목록에서 핑크 플로이드는 늘 빠져 있었다.

몇 년 전에도 이 문제에 대해 뜬금없이 생각해본 적이 있거니와, 나름의 진단은 그들 특유의 버라이어티하고 변화무쌍한 음악적 아이디어와 가공할 무대장악력에 지레 질려버린 탓이 아니었던가 싶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그건 진짜 이유가 아니다.

‘나쁜 취향’을 갈무리하며 다시 꺼내 듣는 그들의 음악은 여전히 놀랍고 호소력 짙다.

20세기 음향기술의 발전을 주도해 온 그들 특유의 전위적 사운드 메이킹과 한 편의 웅장한 오페라를 연상케 하는 현란한 무대장치들까지 부언한다면 놀라움은 배가된다. 내가 아는 한, 핑크 플로이드만큼 명징한 주제의식 아래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음악적 아이템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하여 범인류적이고도 다차원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줄 아는 뮤지션은 극히 드물다.

그들은 음악의 장인을 넘어 무대가 가지고 있는 대중장악력의 메커니즘과 시대 변화에 따른 첨예한 문제의식의 쟁점들을 탁월하게 짚어낸다. 그 범 세대적인 음악적 전위의 중심엔 밴드의 베이시스트이자 음악적 마스터인 로저 워터스가 있다.

개인적으로 로저 워터스는 내가 핑크 플로이드를 경원하게 된 일차요인이다. 2차 세계대전에서 아버지를 잃은 것에 대한 과도한 콤플렉스와 내성적인 천성 및 그로 인한 염세적 독단이 점입가경인 로저 워터스의 세계관은 핑크 플로이드 음악의 핵심 축이자 기본질료라 할 수 있다. 앨런 파커 감독의 영화로도 유명한 ‘The Wall’은 그런 의미에서 로저 워터스 개인의 편협한 망상일기라고 해도 과언 아니다.

그런데 그 음반이 이룩한 음악적 성과는 별개 문제로 構? 적어도 한 개인의 편협한 사상이 집단 광기의 파시즘으로 이어진다는 ‘The Wall’의 메시지가 내게는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로저 워터스 개인의 무의식적 강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판단은 약물로 인한 마취 상태를 몽환적으로 표현한 음반 수록곡 ‘Comfortably numb’등의 곡이 바로 로저 워터스가 지향하는 세계의 원형이 아닐까 하는 의심에 일차적으로 근거한다.

내가 듣기에 그 곡을 비롯해 현실 도피의 이상향을 노래한 몇몇 곡들은 폭력과 파괴가 넘치는 세상을 아름답게 우회하는 저 세상의 멜로디처럼 들린다. 그로 인해 현실의 폭력과 비참성이 역설적으로 부각된다.

아름다운 저 세상의 멜로디는 일방의 독단과 쌍방의 오해가 불꽃을 튀기는 끝없는 전장의 연속으로서의 현실 위를 두리둥실 부유한다. 좌절된 도피의 구름과 가열되는 포연이 샴쌍둥이로 공존하는 현실의 표면 위에서 로저 워터스는 세상의 만연한 폭력 위에 우뚝 서고 싶어 하는 게 아닐까하는 게 내 오래된 의심의 요지이다.

그의 고통은 절박하고 진실하긴 하되, 그 고통을 다스리고 치유하는 그의 시선은 너무 안으로 굽어있다. 스스로에게 깊숙이 굽어든 시선은 세상의 중심에 놓이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망상적 세계관을 증폭시킨다. 내가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에 열광하면서도 그들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다.

예술적 재능과는 별개로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을 통해 생각하게 되는 로저 워터스는 나와 너무 닮았다. 그러니 그들을 흠모하느니 나만의 독단적인 일기를 써나가는 게 나로선 더 절박하고 솔직한 일이지 않겠는가.

핑크 플로이드의 흥망성쇠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인물은 로저 워터스지만, 소위 핑크 플로이드의 정신적 지주라 할 수 있는 인물은 따로 있다. 바로 창단 멤버이자 기타리스트였던 시드 배릿이다.

비록 데뷔앨범 ‘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1967)에 참여한 이후 약물과다 복용과 그로 인한 망상증으로 탈퇴할 수밖에 없었지만, 밴드의 나머지 멤버들은 오랫동안 그의 음악적 재능과 독특한 감수성의 영향 아래 있음을 자인했다.

세계적인 밴드로 성공한 이후 발표한 1975년 앨범 ‘Wish you were here’의 ‘You’가 다름아닌 시드 배릿이었다. 나 역시 개인적으로 시드 배릿에게 강한 매력을 느끼는데, 독특한 비음과 난해한 가사, 단순하기 그지없는 사운드를 선보인 그의 솔로 앨범들은 록계의 불가사의한 컬트로 회자된다. 하지만 전성기 핑크 플로이드 사운드에 익숙한 사람들은 싱겁고 꺼칠한 사운드와 다소 무성의한 창법에 실망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내가 그에게서 느끼는 가장 큰 매력은 특유의 환상을 유머러스하게 비트는 유머감각이다. 유머는 외부 사물뿐 아니라 자기자신마저 저 만치 놓인 돌멩이를 바라보는 양 무심하게 바라보지 않으면 불가능한 자기관리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는 평생을 약물에 빠져 몽롱하게 살면서 낙오자의 이미지를 가지게 된 시드 배릿이 과잉된 비장미와 자기연민으로 희대의 성공을 거둔 로저 워터스보다 더 매력적인 인물로 여겨진다.

‘나쁜 취향’은 그렇듯 로저 워터스 식의 망상적 일기의 충동에서 시작되어 시드 배릿처럼 비틀린 유머를 스스로 함양하기 위해 1년 동안 (별로 열심히는 아니게) 갈고 닦은 내 나름의 인성론이었다고 자평한다. 이런 결론이 썰렁하더라도 어쩌겠는가, 그게 나의 한계인 것을. 열독해주신 불특정 소수의 대한민국 국민들께 많이 웃겨드리지 못했음을 사과드리면서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다, 꾸벅.

시인 강정 nietz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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