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지금 여러분의 눈앞에 백지 한 장이 놓여 있습니다. 이 종이로 종이비행기를 접어서 가장 빠른 시간 내에 멀리 날리는 사람이 이기는 활동입니다. 신속하게 시작하세요.”
지역교육청에서 운영하는 중등 영재교육원에서 학생들에게 종이를 한 장씩 나누어 주며, 위와 같은 활동을 하도록 지시했다. 중학생에게 웬 유아기적 문제를 내는 것이냐고 의아해 할 수도 있었으나, 수학 ․ 과학 영재 학생들은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열심히 종이접기를 시작했다.
차 한 잔을 마시며 여유롭게 종이비행기가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는데, 갑자기 필자의 작은 키를 넘어서 주먹만하게 구겨진 종이 뭉치가 교단을 향해 힘차게 날아갔다. 어느 한 학생이 교실 앞쪽을 향해 일그러진 종이 뭉치를 던지고 나서, “완성”이라고 외친 것이다.
아직 다른 학생들은 종이비행기를 더 멀리 날리기 위해 날개의 크기를 조정하고 있고, 비례를 맞추며 비행기의 모양을 변형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종이 뭉치를 던진 아이에게 모든 학생들의 시선이 모아졌고, 그 학생에게 왜 그렇게 종이 뭉치를 만들어서 던진 것이냐고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그 학생은 “그 종잇조각을 왜 종이비행기라고 하지 못하나요? 선생님께서는 종이를 가지고 가장 멀리 빠르게 던지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목표를 위해 동그랗게 뭉쳐진 종이비행기를 만들었을 뿐입니다.”
그 학생의 기발한 답변에 저절로 함박웃음을 짓게 되었고, 다른 학생들도 자신의 미완성 종이비행기를 구겨 접으며 힘차게 “완성”을 외쳤다.
교단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면 아이들의 틀에 박힌 사고와 진부한 표현에 아쉬운 마음이 생길 때가 있다. 자신만의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주저하고 웃음으로 모면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머릿속에 ‘창의성’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참신하고 기발한 그 무엇인가에 목말랐던 필자는, 학교에서 유머감각이 뛰어나기로 소문난 학생을 찾아가 보았다. 그 학생이 하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연예인들의 유행어를 모방하고 도습하는 정도였다. 그 학생이 따라 하라는 유행어를 마지못해 웃으며 하나 배워오고야 말았다.
창의성이 발현되어야 하는 국어수업에서도 비슷하게 반복되는 비유가 슬픈 느낌을 전해주곤 한다. 왜 사랑하는 사람의 입술은 항상 ‘앵두’이며, 내 마음은 늘 ‘호수’이고, 누나의 얼굴은 ‘보름달’이 되어야 하는가? 매번 진부하게 반복되는 비유와 고정적인 예시가 등장하는 것을 보며 어떻게 하면 창의력을 배양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창의성’이라는 주제는 손에 잡히는 간결한 내용이 아니며, 교육 내용을 구성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 새로운 형태로 학생들의 다양하고 복합적인 사고를 유도하는 교사들도 많이 있다.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체육 교사가 학생들에게 무용을 지도하며 ‘창작무용’을 준비하여 발표하도록 한 광경을 우연히 본 적이 있다. 학생들은 자유롭게 주제를 선정하고 특이한 의상을 준비하여 공연에 나섰는데, 독도를 냠냠 하려는 일본인을 혼내주는 이야기, 새가 태어나면서부터 날기까지의 이야기, 학생들의 힘든 하루 일과 등 기발하고 재미있는 주제를 자유롭게 표현하고 있었다. 또한 한 교사는 미디어를 좋아하는 학생들에게 공익 광고를 직접 제작해 보도록 했는데, 학생들의 재치 있는 이야기와 꼼꼼한 구성이 담긴 훌륭한 작품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창의성 교육은 현재의 교육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서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지만, 부족한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요즘과 같은 정보화 사회에서는 좀 더 <활발하고 적극적인 창의성 교육> 이 더욱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창의성은,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활발하고>
다음 시간에 좀 더 세밀한 창의성 이야기를 나눌 것을 기약하며 글을 마무리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위에 등장한 최고의 유머학생에게 하고 싶은 말이 떠오른다. “진영야! 선생님이야. 너만의 언어와 너만의 유머로 나를 웃겨주면 안되겠니~?”
강용철 <서울 경희여중 국어과 교사> yongchury@hanmail.net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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