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 주주총회 시즌 개막에 맞춰 각 기업들이 경영권 방어 문제를 잇달아 제기하고 있는 것은 우리 업계에도 적대적 인수합병(M&A)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는 반증이다.
국내 기업에서 적대적 M&A, 또는 투기자본의 기업 경영권 위협 문제는 해외 투기펀드인 소버린의 SK 경영권 위협으로 부각됐다가 사태 해결에 따라 수면 아래로 잠기는 듯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국제적 ‘기업사냥꾼’으로 꼽히는 칼 아이칸이 KT&G를 상대로 지분전쟁을 벌이면서 투기세력에 의한 적대적 M&A 시도는 국내 기업에도 상존하는 위협으로 부상했다.
적대적 M&A 어떻게 진행되나
일반적인 적대적 M&A는 공개매수를 통해 이뤄진다. 공개매수는 특정 기업의 주식에 대해 매입기간과 가격, 수량 등을 광고 등을 통해 미리 제시하고, 증권시장 밖에서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주식을 매입하는 형태. 아이칸이 KT&G 경영권확보를 위해 시도하는 것도 이 방법이다.
주식시장을 통해 장기간에 걸쳐 특정 주식을 비공개적으로 매입, 원하는 지분율까지 끌어올리는 시장매입, 다수의 주주로부터 주주총회에서의 의결권 행사 위임장을 확보, 경영권을 얻는 위임장 대결 등도 적대적 M&A의 대표적 유형이다.
물론 M&A가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업사냥꾼들은 부실기업을 인수, 건전화 작업을 통해 기업의 몸값을 불린 뒤 매각, 결과적으로 회사를 살리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한다.
기업 차원에서도 해외 투기자본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경영 투명성을 확보를 위해 노력하기도 하고, 기업 주주중심의 경영을 강화하기도 한다.
하지만 기업사냥꾼들이 적대적 M&A를 추진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보다 많은 시세차익을 얻는 것이다. M&A 대상회사로 지목된 회사는 경영권방어차원에서 주식을 고가에 매입해야 해 결국 주가를 올리는 요인이 되고, 사냥꾼들은 주식을 되팔아 시세차익을 남기는 것이다.
실적에 비해 과도한 배당금 책정을 요구하는 등 주주들의 단기 자본이익에 치중하는 경영구조로 인해 기업의 투자 위축 등 장기적 건전경영에 문제점을 드러내기도 한다.
적대적 M&A 노출 기업 58개사
사태의 심각성은 국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중 적대적 M&A에 노출된 기업이 예상보다 많기 때문이다. 최근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관리종목을 제외한 유가증권시장 상장 604개사 중 외국인 지분이 최대주주 지분보다 많은 종목이 58개에 달한다.
이 중에는 삼성전자, 포스코, 신한금융지주, KT 등 이른바 초우량 기업으로 분류되는 회사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외국인이 경영권을 목적으로 지분을 5%이상 확보하고 있는 상장사가 109개에 달하고, 주식 보유목적을 밝혀야 하는 이른바 5%룰에 대한 외국인의 보고 건수도 지난 해 2,500건을 넘었다.
포스코는 연 순이익이 3조원을 웃도는데다 포스코건설, 포스틸 등 연간 수천억원대의 이익을 내는 알짜기업을 보유하고 있어 기업사냥꾼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은 기업이다.
최대주주는 현재 국민연금으로 돼있지만 실질 최대주주는 미국계 얼라이언스 캐피털펀드다. 지난 해 9월 5.72%이던 지분율을 최근 6.86%로 높였다. 얼라이언스는 지금도 꾸준히 지분을 늘리고 있지만 국민연금은 이달 초 지분율을 3.54%에서 2.76%로 낮췄다.
KT도 국민연금(3.63%)이 형식적인 최대주주이지만 미국계 템플턴펀드가 경영참여 목적으로 7.78%를, 브랜디스인베스트먼트와 캐피털그룹이 각각 7.85%와 6.10%씩을 보유하는 등 외국계 지분율이 압도적이다.
KT는 2004년 이후 단일 외국자본이 5% 이상 취득, 지배주주가 되려면 정통주의 허가를 받도록 해 사실상 외국계 자본으로의 넘어가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만, 이들 3개 펀드는 이미 2004년 이전에 지분을 취득한 터라, 연합전선을 펼칠 경우 경영권 방어에 대한 별다른 대응책이 없다.
이 회사도 자회사 KT프리텔, NTC의 수익성에 대해 외국인 대주주들이 재평가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민영화를 추진중인 한국전력, 한국가스공사, 기업은행 등도 추후 정부 지분 매각시 국내 대기업에 지배주주를 허용하지 않을 경우 제3의 포스코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국민은행은 외국인 지분율이 85%나 되는데다, 미국 캐피털그룹(7.19%)과 프랭클린(5.76%)이 1, 2대주주로 참여해 있고, 현대산업개발, NHN, 현대상선, 대우조선해양 등도 경영권 방어에 취약한 회사로 손꼽힌다.
외국인 지분이 60%에 달하는 삼성전자는 최근 국회가 추진 중인 금융산업구조개선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이 보유한 지분 일부의 의결권이 제한돼 경영권 방어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한창만 기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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