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수(21ㆍ한체대)가 토리노에서 피날레 금메달을 따내며 '쇼트트랙 황제'로 등극했다.
1,000m와 1,5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안현수는 26일 열린 4명의 주자가 111.12m의 트랙을 45바퀴 도는 남자 계주 5,000m 레이스의 마지막 주자로 나서 1위로 피니시 라인을 통과하며 금메달을 추가, 3관왕에 올랐다.
안현수는 이로써 바이애슬론의 미카엘 그라이스(독일), 여자 쇼트트랙의 진선유(18ㆍ광문고)와 함께 대회 3관왕에 오르며 대회 MVP의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안현수는 쇼트트랙 남자 5,000m 계주에 앞서 열린 자신의 취약 종목인 500m 결승에서도 막판 발 내밀기로 동메달을 따내는 등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쇼트트랙 4개 종목에서 모두 메달을 획득하는 대기록도 아울러 달성했다.
안현수는 신목고 시절부터 차세대 한국 빙상의 대들보감으로 주목 받았지만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 '불의의 사고'로 고개를 떨궈야 했다.
남자 쇼트트랙 1,000m 결승에서 미국의 안톤 오노와 충돌하며 아깝게 메달을 놓친 것. 첫 올림픽 출전에서 메달 사냥에 실패했던 안현수는 4년간 절치부심, 혹독한 훈련을 이겨낸 끝에 토리노에서 금메달 3개를 목에 걸며 '쇼트트랙 황제'로 등극했다.
대회 출전 전 파벌 싸움과 선수촌 입소 거부 등 잡음이 일며 메달 전선을 어둡게 했지만 탁월한 기량과 승부사 기질로 금맥을 캐는 데 성공한 것.
안현수는 "고된 훈련 끝에 메달을 걸게 돼 기쁘다. 올림픽 첫 메달만 해도 기쁜데 금메달을 3개나 따게 돼 행복하기만 하다"고 3관왕에 오른 소감을 밝혔다.
■ 남자도 힘든 강훈련 견딘 '18세 악바리'
여자 쇼트트랙의 에이스 진선유(18ㆍ광문고)는 대표팀의 막내다. 또래들처럼 남자 연예인에게 열광하고 한창 호기심이 많을 나이. 그러나 진선유는 훈련에만 들어가면 평범한 여고생에서 ‘연습 벌레’로 변모한다.
2004년 첫 태극마크를 단 진선유는 지난 2년간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저녁까지 스케이팅과 지상 체력 훈련을 반복하는 강행군을 묵묵히 소화해냈다. 나이에 걸맞지 않은 어른스러움과 성실함이 진선유의 트레이드 마크.
대표팀 코칭스태프조차 “(진)선유는 훈련할 때는 체력이 뛰어난 남자 선수들이 헉헉거리며 힘들어 해도 이를 악물고 참아낸다”며 혀를 내두를 정도다. 진선유는 바로 이런 성실성과 집념을 바탕으로 전이경 김소희 등 쟁쟁한 선배들도 이룩하지 못했던 한국 올림픽 사상 첫 3관왕의 쾌거를 달성했다.
1988년 12월 한국 '빙상의 메카' 대구에서 아버지 진대봉씨와 어머니 김금희씨 사이에 1남1녀 중 장녀로 태어난 진선유는 경희대 사대 부속초교 1학년 때 처음으로 스케이트화를 신었다. 원래 수영을 했던 진선유는 우연히 빙상장에 갔다가 스케이트의 매력에 흠뻑 빠지며 쇼트트랙과 인연을 맺었다.
진선유가 한국 쇼트트랙에 혜성처럼 등장한 것은 2004년. 그 해 5월 선수 생활 10년 만에 태극마크를 단 진선유는 10월 중국에서 치러진 쇼트트랙 월드컵에서 여자 3,000m 슈퍼 파이널과 계주에서 각각 1위를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기량이 일취월장한 진선유는 2005년 11월 제3차 월드컵에서 5관왕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하며 토리노 동계올림픽의 가장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히기 시작했다.
진선유는 26일(한국시간) 1,000m에서 금메달을 따낸 뒤 “어제까지 3관왕 얘기를 들었을 땐 부담감도 느꼈다. 그러나 경기장에 들어가면서 '한번만 참고 잘 타자'라고 마음을 다잡았다”며 “지금은 집에서 쉬면서 놀고 싶은 생각뿐”이라고 환한 웃음을 지었다.
이승택 기자 lst@hk.co.kr김정민기자 goav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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