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초등학생 성추행 살해사건을 계기로 정부와 정치권에서 쏟아내고 있는 각종 방안들이 졸속 대책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당정은 24일 아동ㆍ청소년 대상 성범죄의 경우 초범일지라도 얼굴 직업 상세주소 등을 모두 등록해 지역주민들이 언제든지 열람할 수 있도록 하고, 상습범에 대해선 주거를 제한하는 등의 방안을 내놓았다. 한나라당도 지난해 7월 국회에 제출했다가 인권단체와 학계 등의 거센 반발에 밀려 논의가 중단된 ‘전자 위치추적장치(일명 전자팔찌)’ 법안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이날 밝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여론에 밀린 감정적이고 무리한 대책이 많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전자팔찌의 경우 비록 성 범죄자에 대한 치료와 예방을 목적으로 한다 해도 개인 자유와 인격을 본질적으로 침해한다는 점에서 실제 형벌과 같은 효과를 내기 때문에 이중처벌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홍관표 국가인권위원회 사무관은 “가해자라 할지라도 인권은 모두에게 소중한 것임을 감안하면 형기를 마친 성 범죄자에게 추가 처벌을 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고 말했다. 범죄자 관리 차원에서 현행 보호관찰제도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도입을 검토할 수 있으나 특정 범죄에 국한해 처벌 수단으로 삼기에는 무리라는 것이다.
신상공개를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외국의 경우 잠재적인 피해자들을 구체적으로 보호하고 경계심을 갖도록 하기 위한 수단으로 신상공개를 활용하고 있는 반면, 우리의 신상공개 제도는 기본 목적이 처벌에 있기 때문에 자칫 성 범죄자들을 영원히 사회와 격리 시키거나 다른 범죄로 빠지게 하는 등 역효과를 낼 가능성도 있다.
이 밖에 수사의 신속성을 기하기 위해 성폭력 범죄자의 유전자정보은행을 설치하는 여당안 역시 불필요한 정보까지 과도하게 유출될 위험이 있다. 권오재 참여연대 사회인권국 간사는 “데이터베이스의 특성상 더 많은 예비 데이터가 필요할 것이고, 결국 유전자 정보채취 대상이 성폭력 범죄 외의 기타 강력범죄, 나아가 일반범죄로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제도의 실효성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이번 초등학생 살해 사건처럼 가해자 집에서 은밀히 범죄가 저질러지면 전자팔찌를 채웠더라도 범죄를 막기 어렵다”며 “가해자가 심리적인 위축을 느끼는 것 외에는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마치 전자팔찌가 성범죄 방지의 유일한 해결책인 양 과대 포장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정치권이 선정적인 정책을 쏟아내 논란을 야기할 게 아니라 성범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차분히 대응할 것을 주문한다. 이날 당정 대책에 포함된 양형 기준의 강화, 수사과정에서 피해자들이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대책 마련 등 당장 해결 가능한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국회와 정부는 이슈가 터질 때만 여론을 의식한 대책을 쏟아내지 말고 어떤 방안이 성폭력 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이삭 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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