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말 조류인플루엔자(AI)에 걸린 닭과 오리를 묻은 사람들이 AI 바이러스에 감염됐었다는 사실이 24일 뒤늦게 밝혀짐으로써 우리나라가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AI가 전국을 강타했던 2003~2004년 당시 정부는 바이러스가 인체에 감염되지 않았고 이를 막기 위한 방역체계가 굳건하다고 장담했던 터여서 이번 사태로 방역당국에 대한 불신도 커질 전망이다.
이번에 확인된 4명의 AI 감염자들은 당시 가금류에서 발견됐던 동일균주인 H5N1에 노출됐다. 이 바이러스는 AI 바이러스 중 가장 악명이 높은 것으로 인체에 감염될 경우 치사율이 5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감염자들은 당시 임상 증상을 보이지 않아 방역당국의 감시망에 걸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질병관리본부는 이들이 감염 직후 발열 호흡기증상 등 AI에 걸렸다고 믿을 수 있는 증상을 보이지 않았지만 만일을 위해 작업에 참여한 2,000여명의 혈청을 뽑아서 보관했다.
질병관리본부는 이 가운데 일단 406명에 대해 2차례의 자체 검사를 마쳤는데 이 중 11명으로부터 감염 징후가 발견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정밀검사를 의뢰했다. CDC는 이 중 4명이 H5N1에 감염됐지만 발병하지 않고 항체를 갖게 됐다는 사실을 통지해 왔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 이들은 바이러스에 감염됐지만 발병하지 않고 항체만 형성된 무증상 감염자들이기 때문에 국내에 AI 인체감염 경보가 울린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방역당국이 AI에 걸린 철새로부터 닭과 오리 등 가금류로 바이러스가 옮겨가는 과정의 차단에만 주력하고 인체감염 가능성에 무게를 두지 않았기 때문에 동남아시아 유럽 등을 휩쓸고 있는 AI가 국내로 들어올 경우 일순간에 방역장치가 마비될 수 있다는 경고를 내놓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도 “양성 반응을 보인 4명이 환자로 발전하지는 않았지만 H5N1 바이러스에 노출됐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이번에 미 CDC로부터 검사를 받거나 국내 검사를 마친 사람을 빼도 아직 1,600여명이 정밀검사가 받지 않은 상태여서 보균자, 혹은 발병 환자의 추가 확인 가능성은 남아 있다.
정부는 이번 사안이 미칠 파장을 우려하면서도 국내 양계시장에 악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부 관계자는 “국내에 AI가 다시 유행하는 것은 아니며 AI환자가 발생한 것으로 오해해서도 곤란하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유통 중인 닭 오리 계란은 안심하고 먹어도 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한편 관련 업계에서는 현재 AI 청정지역으로 지정돼 있는 우리나라의 지위가 흔들릴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닭고기 수출 등에는 지장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부분이다.
양홍주 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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