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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윤 위원장의 담론(談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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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윤 위원장의 담론(談論)

입력
2006.02.27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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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談論)에도 ‘그래샴의 법칙’이 작용하는 것 같다. 마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강퍅하고 날 선 공박이 판을 치다 보니 정작 차분하게 따져봐야 할만한 얘기들은 힘 없이 소멸한다.

얼마 전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이 ‘양심을 걸고’ 한 얘기도 어느새 ‘찻잔 속의 태풍’으로 전락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하기야 청와대가 나서 ‘서강학파는 물러가라’는 따위의 느닷없는 전투적 주장으로 공연한 시비를 부추기는 판국이니, 정작 중요한 얘기가 공명할 여지가 어디 있겠는가.

윤 위원장이 지난해에 이어 어렵사리 다시 입을 연 것은 지난 9일 이었다. 외환위기 전 종금사의 해외채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지휘책임 때문에 절치부심의 세월을 보낸 그가 이날 작심하고 겨냥한 것은 우리 경제의 ‘금과옥조’인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원칙이다.

그는 먼저 “금산분리 원칙을 하루아침에 허물면 금융이 산업의 사금고화 하거나 어려움이 초래될 우려가 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금산분리 원칙에 집착해 어떠한 변화도 거부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양심을 걸고 얘기하라면,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윤 위원장의 논리는 이렇다. 당장 외환은행과 우리은행 등 국내 주요 은행들이 잇달아 시장에 매물로 나오게 돼있다. 이 경우 시장개방에 따라 외국자본의 국내 은행업 진입장벽이 없어졌기 때문에 막대한 자금력을 갖춘 외국 금융자본이 국내 우량은행을 공룡처럼 집어삼킬 공산이 커졌다. 물론 국내에도 원매자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웬만한 은행이나 국내 사모투자펀드(PEF)는 자본의 한계 때문에 막상 수 조 단위의 ‘돈 싸움판’이 벌어지면 밀리기 십상이다.

반면 국내 기업들은 현재 60조~70조원에 이르는 여유자금을 쌓아두고 있다. 그런데도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산업자본이 의결권 있는 은행 지분을 4% 이상 보유할 수 없도록 한 현행법의 역차별적인 족쇄 때문에 우리의 은행이 외국의 ‘공룡’에게 잡혀 먹히는 상황을 꼼짝 못하고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윤 위원장은 16일 국회 정무위에서도 의원들을 상대로 같은 주장을 폈다. 그러나 본격적인 공론화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삼성생명과 삼성카드가 한도를 넘어 보유하고 있는 다른 삼성계열사의 지분 처리문제와 직결된 금융산업구조개선법(금산법) 개정안 처리를 앞두고 정치권으로서는 ‘공연한 오해’를 피하고 싶은 기류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윤 위원장의 금산분리 원칙 재검토 주장은 삼성이나 금산법에 국한된 문제는 결코 아니다. 금산법 뿐 아니라 은행법과 공정거래법 등 국내 관련법들 속에서 금융과 산업 간의 자본이동을 막기위한 장벽은 ‘철벽’처럼 완강하게 일관돼 있다. 윤 위원장의 주장은 부작용을 예방하면서 현실에 맞게 이 ‘철벽’에 숨구멍을 터주자는 것이다.

사실 금산분리 원칙은 대기업이 은행의 경영권을 장악해 고객이 맡긴 돈을 함부로 꺼내 씀으로써 야기되는 경제적 비리와 폐해를 막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해외의 산업자본이 칼라일이나 론스타 등 우리에게도 낯익은 글로벌펀드를 통해 국내 은행의 경영권을 장악하는 최근 현실에서 국가 단위의 경제정의를 추구하기 위한 이 원칙은 유효성에 대한 재검토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비단 국내 금융산업을 외국자본으로부터 방어한다는 수세적 입장이 아니더라도 금산분리 원칙의 재검토는 여전히 유효하다. 외환위기 이래 외국자본이 국내에 들어와 은행과 기업, 부동산에 투자해 막대한 수익을 올린 것처럼, 우리도 앞으로 자본을 해외에 수출하고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금융자본의 덩치를 키울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국회에서 금산법 개정안이 어떻게 처리되든, 윤 위원장이 제기한 금산분리 원칙에 대한 전략적 재검토 작업이 계속돼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장인철 경제산업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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