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기업인들은 확실히 ‘초점’가 달랐다.
한국일보가 참여정부 출범 3주년을 맞아 실시한 경영자(CEO) 대상 설문조사 결과를 분석해보면 예상대로 정부가 생각하는 정책적 우선순위와 기업인들이 원하는 정책방향 간에는 적잖은 괴리가 존재했다.
정부가 기업의 요구를 100% 수용할 수는 없고 기업 역시 정부 희망대로 따라갈 수는 없겠지만, 이 간극을 얼마나 좁히느냐에 따라 참여정부 잔여 2년의 경제운용은 성패를 달리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참여정부에 대한 인식
재계 일각에선 흔히 참여정부의 경제적 정체성에 대해 ‘반(反)기업적이다’ ‘반시장적이다’고 평가한다.
기업들이 투자를 안 하는 것도 현 정부의 이런 태도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일각에선 ‘기업은 수익확신만 있으면 사회주의 정부 아래서도 투자를 한다. 투자기피를 정부 탓으로 돌리는 것은 핑계일 뿐’이라고 반박한다.
기업들에게 투자부진의 솔직한 이유를 물은 결과, ‘참여정부가 반시장적이고 반기업적이라서’란 응답은 13.9%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투자경색에 정부책임은 없으며 ‘결국은 기업 탓’이란 응답도 16.7%에 그쳤다.
하지만 ‘참여정부가 반시장적, 반기업적이어서 투자가 부진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현 정부가 투자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는 응답이 63.9%나 됐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참여정부의 정책기조가 투자에 ‘방해요소’는 아니더라도 결코 ‘투자친화적’이지는 않다는 것이 민간 경제인들의 인식이었다.
양극화 해소의 정부역할
한국경제가 안고 있는 양극화의 심각성에 대해선 기업인들도 공감했다. 양극화 해소를 위해 정부가 나설 수 밖에 없다는 점도 인정했다. 하지만 참여정부가 집권 후반기 정책의 최우선순위를 여기에 둔 것과는 달리, 기업인들은 정부개입의 최소화를 주장했다.
‘정부는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가 15.8%, ‘국민설득과 동의를 전제로 정부는 더 나서야 한다’도 21.1%에 그친 반면 ‘원칙적으로 시장에 맡기고 정부는 최소한의 사회안전망구축과 저소득층 지원만 해야 한다’는 응답이 60.5%에 달했다.
성장이냐 분배냐
참여정부의 정책기조는 성장-분배의 균형발전론, 혹은 상대적 분배 중시론에 가깝다. 하지만 기업인들은 예상했던 대로 성장 우선론이 압도적이었다.
응답자의 과반수가 넘는 51.3%가 ‘파이부터 키운 뒤 나눠야 한다’(선성장-후분배)는 의견을 개진한 반면, ‘나눠주는 구조를 바로 잡지 않으면 더 이상 파이는 못 키운다’(분배우선)는 응답은 8.1%에 불과했다. ‘성장과 분배 어느쪽에도 치우치지 말고 함께 가야 한다’는 응답도 성장우선입장에 훨씬 못 미치는 40.6%에 그쳤다.
규제완화 방향
기업인들은 참여정부의 지난 3년간 경제정책 가운데 가장 미흡한 분야로 규제완화와 부동산정책을 꼽았다. 다음은 일자리창출 실패→노사정책의 일관성 결여→국책사업 과잉→양극화 및 빈부차 심화 순이었다.
규제완화방향에 대해서도 정부와 기업의 시각은 엇갈림이 확인됐다. 기업은 꼭 원하는 것들은 대부분 정부입장에선 국민경제적 이유로 받아들이기 힘든 사항들이다. 기업들은 참여정부가 꼭 해줬으면 하는 규제완화조치의 첫번째로 법인세 인하를 포함한 세제지원(30%)을 꼽았지만, 세율인하는 재정여건상 수용불가 사안이다.
세제혜택 다음으로 기업들이 원하는 규제완화 사안은 고용ㆍ해고의 탄력성제고와 수도권 공장증설허용(입지규제완화)으로 각각 17.1%의 응답이 나왔다. 이 역시 노동계의 이해 및 수도권 집중억제시책과 정면 충돌하는 부분이다.
이밖에 ▦출자총액제한 완화(15.7%) ▦지주회사 설립요건완화(7.1%) ▦금융계열사 의결권제한 완화 등 경영권방어 장치보장(5.7%) ▦금융-산업 분리벽 철폐(5.7%) 등의 요구가 나왔다.
부동산정책
부동산정책 방향에 대해서도 기업인들의 의견은 달랐다. 기업인들 자체가 소득수준이 높고 서울 강남지역에 주로 거주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부동산문제 해결을 위해 ‘과표를 더 현실화하고 보유세도 더 강화해야 한다’와 ‘재건축을 더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은 각각 4%, 8%에 불과했다. 대신 ‘재건축규제는 공급감소로 가격불안을 더 부추긴다.
재건축규제를 풀어야 한다’(21.7%) ‘신도시를 더 짓고 임대아파트를 늘려야 한다’(27.6%)가 훨씬 많은 응답을 차지했다. 세제나 규제를 통한 수요억제 보다는 공급확대로 풀어야 한다는 얘기다. ‘교육문제를 뺀 부동산대책은 무의미하다’(23.1%) ‘강남의 국지적 현상인 만큼 별도대책은 불필요하다’(14.5%)는 대답도 적지 않았다.
한편 향후 경기전망에 대해선 ‘참여정부 임기종료 시점인 내년말까지 현 상승세가 지속될 것’이란 의견(51.3%)과 ‘올해까지는 상승국면이 전개되다가 내년엔 하강국면으로 전환될 것’이란 예측(47.2)이 엇갈렸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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