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에선 최대 투구수가 65개로 제한된다. 50개 이상을 던지면 최소 4일을 쉬어야 하고, 30개 이상을 던지면 하루를 쉬어야 한다. 이틀 연속 던진 투수도 마찬가지로 다음날 등판할 수 없다. 선수 보호 차원에서 만든 조항이 ‘투수 놀음’으로 불리는 야구의 본질적인 묘미를 퇴색시킨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 후쿠오카에서 대표팀의 훈련을 이끌고 있는 김인식 감독은 “이번 대회에서 우스운 일들이 많이 생길 것 같다. 혼자 멍하게 있다가도 투수가 바닥날 수 있다는 생각이 떠올라 아찔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투구수 제한이란 ‘해괴한’ 규정 때문에 각국 대표팀은 사실상 비상이 걸렸지만 대회 사무국은 부작용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다. 대회 개막이 코 앞에 닥쳤지만 아직 연장전과 우천 취소 경기에 대한 규정이 결정되지 않았다. 만약 무승부를 인정하지 않고, 연장전을 실시한다면 최악의 경우 투수가 모자라 경기가 중단될 수도 있다.
WBC 기술위원회는 내달 2일 연장전 규정에 대해 결정할 예정이지만 이에 맞춰 각 국이 구체적인 전술을 짜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WBC 기술위는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선수노조 소속이 각각 2명, 국제야구연맹(IBAF)과 대회 개최국인 푸에르토리코와 일본측 관계자 1명 등 모두 7인으로 구성돼 있다. WBC의 운영이 미국의 의도대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한국은 의사결정과정에서 배제돼 있다.
김인식 감독은 “한국 야구인들로선 잘못된 부분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이 대회가 제대로 잘 존속되길 바라기 때문에 불만을 이야기하지 않을 뿐”이라고 말했다. 전례가 없는 독특한 규정 때문에 ‘야구의 세계화’를 주창하며 미국이 야심차게 출범시킨 WBC가 웃음거리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후쿠오카=한준규 기자 manb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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