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박래부 칼럼] 스크린쿼터 어찌할 것인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박래부 칼럼] 스크린쿼터 어찌할 것인가

입력
2006.02.27 01:45
0 0

애써 구분한다면 영화 ‘왕의 남자’는 산업인가 문화인가? 지금까지 관객 1,000만 명을 넘어선 한국 영화는 세 편이다. ‘왕의 남자’와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 뿐이다. 관객수가 산업과 문화를 구별해 주는 기준은 아니다. 그러나 이 영화들에는 우리의 애환과 고뇌가 실려 있다. 우리의 삶과 역사를 얘기하는 ‘문화’이기 때문에 한국인이 애착을 갖고 열광하는 것이다.

‘왕의 남자’는 아카데미 시상식에 초대되지 못할 것이다. 그 붉은 카펫은 미국 대중문화의 정수를 향해 가는, 또는 세계인을 미국 문화로 유인하는 통로다. 미국 영화는 우수하고 강력하다.

그러나 아무리 아카데미상을 휩쓸었어도 1,000만 한국인 관객을 동원한 할리우드 영화는 없었다. 할리우드가 한국인을 깊은 공감 속에 웃기고 울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 타 문화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산업이기에 앞서 문화다.

●독이 된 문화다양성 협약

힘은 언제나 문화와 동반하기 때문에, 문화적 지형도에서는 국가적 힘의 우열이 드러난다. 저명한 미국 정치학자 조셉 나이는 국가의 힘을 ‘딱딱한 힘’과 ‘부드러운 힘’으로 구분한다.

딱딱한 힘은 경제력과 군사력을 앞세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힘이다. 부드러운 힘은 문화와 이념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바를 다른 나라들도 원하도록 만드는 힘’이라고 한다. 부드러운 힘은 딱딱한 힘의 바탕 위에서만 위력을 발휘한다. 그는 부드러운 힘도 명령을 내리는 딱딱한 힘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갈파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에 두 가지 힘을 구사하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위한 딱딱한 힘과, 그 전제조건으로 ‘스크린쿼터 축소’를 포함하는 부드러운 힘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다.

이 경우 약소국들이 기댈 수 있는 언덕이 지난해 10월 유네스코 회의에서 통과된 문화다양성 협약이다. 그런데 ‘문화상품에 한해 자국의 보호조처를 인정하자’는 이 협약은 우리에게 오히려 독이 된 듯하다. 스크린쿼터 축소를 재촉하는 계기가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서둘러 우리에게 FTA 협상과 스크린쿼터 축소를 요구해 왔고, 우리는 이런 요구와 ‘개방’ 명분 앞에서 스크린쿼터를 40%에서 20%로 대폭 양보했다.

정부의 축소발표 이후 영화인의 시위가 계속되고, 축소 찬반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예전처럼 영화인의 시위가 삭발로까지 번지지 않은 것은 다행스럽다. 스크린쿼터 폐지가 아니라 축소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 이성적 호소와 주장이 더 설득력을 갖게 된 탓일 수도 있다.

일부 영화인 가운데도 주장되는 축소 찬성론은 근래 우리 영화의 성장이 활발한 경쟁 덕이지 스크린쿼터 때문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이 세계 영화시장의 85%를 독과점한 상태에서, 영국 독일 멕시코 등은 10% 안팎의 낮은 자국 영화 점유율을 보이며 산업 자체가 쇠퇴하고 있다. 그 영화계에 활발한 경쟁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스크린쿼터라는 보호막이 없는 상태에서 할리우드 영화의 획일화에 맞설 힘이 소진된 탓이다.

우리가 지난 해 50%를 넘긴 것은 다행히 이 제도가 유지됐기 때문이다. FTA 자체도 어느 분야에서 유ㆍ불리한지, 또 전체 대차대조표는 어떤지 꼼꼼히 따져 보아야 한다. 정부는 이 부분을 소홀히 하고 있다. 각 여론조사에 따라 찬반 차이가 심한 것은 대중에게 정확한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20% 축소는 지나치게 가혹

20% 축소는 영화계에 큰 타격을 줄 것이다. FTA협상을 위한 전제로서는 너무 가혹하다. 정부는 우리 문화를 아끼는 이들의 희망을 저버리지 말고 다시 적정한 타협선을 찾기 바란다.

축소가 불가피하다면 우리 영화 점유율이 몇 % 이하로 떨어질 경우, 원상회복시킨다는 보장이 전제되었으면 한다. 문화다양성을 지지했던 140여 영화 약소국도 이번 협상을 지켜보고 있다.

수석논설위원 parkrb@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