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랑 딸이 같은 브랜드 옷을 입는다? 엄마는 몰라도 딸 입장에선 썩 유쾌한 일은 아닐지 모른다. 20대 꽃띠 처녀와 40, 50대 유부녀는 혈연을 떠나서 엄연히 취향과 스타일이 달라야 하므로. 그런데 몸짱 아줌마가 뜬 이후 요즘 중년여성들은 옛날처럼 펑퍼짐한 아줌마가 아니다. 얼굴이나 몸매 가꾸는데 처녀들 못지않게 돈과 시간을 투자한다.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는 시대에 태어난 딸들의 엄마를 보는 시선도 많이 변했다. 형제 자매 없이 자란 그녀들에게 엄마는 가정의 파수꾼이기 전에 친구이자 여자다. 흡사 자매처럼 보이는 엄마와 딸이 팔짱을 끼고 쇼핑하는 시대, 패션계가 맘앤도터(M&D, Mom&Daugther)마케팅에 주목하는 이유다.
올해 우리나이로 50세인 가수 인순이가 캐주얼브랜드 베이직하우스의 모델로 발탁된 것은 모녀 마케팅의 대표적 사례다. 인순이는 더블캐스팅된 신세대 가수 아이비와 흡사 모녀처럼 다정한 포즈로 광고용 포스터를 찍었다. 아이비가 올해 24세이니 딱 엄마와 딸 나이다.
광고는 발랄한 딸 아이비가 올오버 스타일 데님 스커트에 흰 셔츠차림이면 엄마 인순이는 데님 바지에 노란색 짚업 스타일 면점퍼를 받쳐입어 소재와 스타일에서 모녀간 세대차이를 허문다. 정서적으로나 스타일상으로 둘은 모녀이면서 친구처럼 보인다.
베이직하우스 관계자는 “주 고객은 20대이지만 30대 중반 이상 연령대의 구매비율이 30%에 달할 정도로 중장년층의 캐주얼구입이 늘었다”면서 “가족이 함께 입는 논에이지(Non-Age)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엄마와 딸 콘셉을 차용했다”고 설명한다.
모녀 마케팅의 선두주자인 프랑스 직수입 여성브랜드 꼼뜨와 데 꼬또니는 지난해 11월 모녀 모델 선발대회를 개최, 선발된 모녀를 프랑스 본사에서 12월 말 주최한 2006 S/S패션쇼 모델로 세웠다. 행운의 주인공은 현재 동덕여대 의상학과에 재직중인 김혜경 교수와 올해 대학에 들어가는 딸 나연씨다. 이들의 패션쇼 사진은 꼼뜨와 데 꼬또니가 전세계에 뿌리는 봄 신상품 카탈로그에도 사용됐다.
꼼뜨와 데 꼬또니를 전개하는 현대백화점 유희열 브랜드매니저는 “구매력있는 30대 후반, 40대 여성들의 패션마인드가 상당히 높아졌기 때문에 이들을 겨냥한 모녀 마케팅이 인기를 얻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현재 이 브랜드의 연령대 구매율은 30~39세가 28%, 40~49세는 24%에 달한다.
지난해 가을 처음 국내 시장에 브랜드를 들여오면서 “프랑스 본사는 ‘모녀가 함께 입는 옷’이라는 구호로 성공했지만 국내서는 과연 주 타깃인 딸들이 좋아할 것인가에 대해 내부 논란이 많았다”고 전하는 그는 “2월중 백화점 매장을 모두 6개로 늘리면서 본격적인 고객반응을 살필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통적으로 50, 60대 장년층의 충성도가 높은 여성브랜드 닥스 숙녀복의 변신도 엄마와 딸을 동시 공략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난 가을부터 대대적인 브랜드 리뉴얼을 진행하고 있는 닥스 숙녀복의 모토는 ‘논에이지, 명품지향 브랜드’다. 디자인 총괄 디렉팅을 하고있는 김영순 상무는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나 일본의 단카이세대가 강력한 소비주체로 떠오르고 있다”면서 “이들은 예전 40, 50대와 달리 패션과 뷰티 등 자기자신을 위한 소비에 적극적이므로 이들의 높아진 안목과 취향에 맞춰 노후화된 브랜드를 젊고 세련되게 바꾸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패션연구소는 지난해 패션시장을 분석하면서 전체 시장의 33%를 차지하는 캐주얼시장에서 40, 50대 중장년층의 비중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1998년 37%였던 비중이 2005년에는 50%를 넘어섰다. 패션계가 이들의 소비파워에 주목하는 배경이다.
패션계 관계자는 “예전 중장년 여성들이 편하고 무난한 옷입기에 그쳤던 것에 비해 요즘 여성들은 딸 같은 젊은 층의 젊고 발랄한 이미지를 선망하고 직접 실현하려 한다. 나이에 따른 옷입기에서 취향에 따른 옷입기로 급속히 변화하는 추세를 따라잡는데 모녀마케팅은 중요한 열쇠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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