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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작가 기획전 '아트스펙트럼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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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작가 기획전 '아트스펙트럼 2006'

입력
2006.02.27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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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韓紙)에 기껏해야 엄지 만하게 그려진 인물들은 흡사 동화속의 삽화처럼 앙증맞다. 그러나 ‘귀엽네…’라고 생각하며 지나치려는 순간 머리 뒷꼭지를 휙 낚아채는 섬뜩함. 정색을 하고 들여다봐야 비로소 정체를 드러내는 소인들은 자기 키만큼 늘인 혀로 타인의 귀를 관통하거나, 혼절한 나체의 소녀를 숲속으로 끌고가고 피묻은 칼로 젖가슴을 자른다(전경ㆍ‘지나치게 부담스럽다’).

이런 작업도 있다. 족히 중형차 크기는 될만한 거대한 광개토대왕비가 허공에 매달려 있다. 투명 비닐랩을 수십 번 겹쳐 입히고 아교로 고정시켜 본을 뜬 작품은 속이 텅 비어있다. 거대한 대왕비에서 작가가 본 것은 한국 사회의 남근주의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이다(송상희ㆍ‘신기루’).

어디서 많이 본 포즈다 싶더니 누군가 “어, 디즈니만화 톰과 제리 같은데” 한다. 쥐와 고양이가 ?고 ?기는 절체절명의 순간, 거대한 화산재가 덮쳐 그대로 화석으로 굳은 듯한 뼈 조각들은 그 해부학적인 완벽함으로 인해 가상과 실재를 혼돈시키고(이형구ㆍ‘아니마투스’ 연작), 정교하게 제작된 건축 모형은 영상프로젝터를 통해 투영되는 순간 실재하는 텅 빈 도시공간으로 둔갑한다(정정주ㆍ‘빌딩’).

회화나 조각 사진 등 전통적인 장르의 구분을 거부하는 젊은 미술가들의 실험정신이 한 공간에서 불을 뿜는다. 삼성미술관 리움이 16일 개막, 5월14일까지 여는 현대미술작가 기획전 ‘아트스펙트럼 2006’이다.

아트스펙트럼은 한국미술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가늠한다는 목표 아래 삼성미술관이 2001년부터 격년제로 열고있다. 그간 김아타 오인환 박미나&사사 김종구 한기창 박세진 등 젊고 능력있는 작가들을 발굴해 스타작가의 산실로 명성을 얻고있다.

올해는 예년의 2배에 달하는 16명의 작가들이 미술관 학예연구실의 엄정한 검증 절차를 거쳐 선정됐다. 급변하는 현대미술의 지형도 속에서 전위적이고도 독창적인 비전을 보여주는 30대 전후의 작가들이다. 김성환 박상현 송상희 이준&장재호 정소연 정정주 천경우 박윤영 지니서 임자혁 손정은 이형구 최승훈&박선민 등 영상과 사진, 회화, 설치를 한데 버무린 작가들과 유일하게 평면회화 만으로 작업한 전경씨가 주인공이다.

전시는 특정 주제가 제시되지 않았음에도 현대 젊은 작가들의 공통 관심사를 확연히 드러내준다. 이들은 가상과 실재, 주체와 객체, 정체성과 차이, 내면과 외양 등 의미와 범주상의 대립 혹은 그 경계선에 주목한다.

유명 만화 캐릭터에 과학적 사실성을 부여해 가상과 실재를 혼돈시키는 이형구씨의 작업이 원본은 없고 모사물만 존재하는 이른바 시뮬라르크 시대의 자화상이라면, 20분 가까운 노출을 통해 초상 사진에 피사체의 육체와 정신의 움직임을 축적시켜 마치 환영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 천경우씨의 작업은 찰나의 미학이라는 사진의 고정관념에 도전한다. 하얀 방에 붉은 색 병풍, 전자 기타, 영상 등을 함께 설치한 박윤영씨는 초현실적 풍경 아래 숨어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관객이 직접 풀어가도록 유도함으로써 예술창조의 주체와 객체를 전도한다.

아트스펙트럼을 총괄 지휘한 이준 삼성미술관 리움 부관장은 “다양한 매체와 장르를 넘나드는 잡식성과 유연한 사고야 말로 이들 젊은 작가들의 특성이자 장점”이라면서 “현대미술이 과거 편의적인 이분법이나 범주화의 오류를 넘어서는 증거라는 점에서 주목된다”고 말했다.

현대미술에 대한 흥미진진한 입문서같은 전시. 매주 화~일요일 오전 11시, 오후 2시에 전시 설명이 있으며 월 25일에는 작가와의 만남 시간도 마련했다. (02)2014-6555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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